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김순선 시집 '바람의 변명'

김창집 2017. 6. 29. 23:01


시인의 말

 

목련이 비상을 꿈꿀 때

한라수목원을 찾았다

자존심 같은

그의 곧은 줄기에

살짝 몸을

기대고

두 팔을 폈다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다

 

2017년 봄

한라수목원에서

   

 

 

바람의 변명

 

길가에 버려진 캔커피 빈 깡통이 빙글빙글

꽹과리를 치고

우울증 환자처럼 구석진 자리에 방치되어 잠자던

쓰레기 조각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길가를 휘젓는다

 

빗물은 낮은 데로

상처를 어루만지듯

스며드는데

 

바람은 큰소리치며 앞장서서 나무들을

동요한다

나무들도 머리풀어

봉기를 든다

 

민들레의 꿈을 위하여

그의 날개가 되리라

폭죽을 터트리듯

민들레의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

   

 

 

저토록 가벼운 것은

 

배롱나무 가지에 참새가 날아와

열매를 쪼고 있다

콕콕 쪼일 때마다 가지가

휘청거린다

 

삶의 무게만큼 지경이 흔들린다

새들은 흔들리면서도 하늘을 우러를 줄 안다

 

위태위태한 작은 가지 위에서도

그네를 타듯

저토록 가벼운 것은

욕심을 다 버려서일까?

   

 

 

꽃을 위하여

 

마음속에 꽃씨 하나 심어보지 않으면

사랑을 모르지

 

마음속에 꽃 한 송이 피우지 않는다면

웃음을 모르지

 

허허벌판 같은 삭막한 마음에

작고 보잘 것 없어도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삼다수 숲길을 걸으며

 

아스팔트 폭염을 뒤로 하고

시티투어를 탔다

산티아고를 떠올리며

한적한 목장 지나 숨죽이는 고요 속으로

 

하얀 덧니를 드러낸 인동꽃

걸음을 옮길수록 하늘을 가리는 숲

재피향이 번지는 오르막길

지팡이 의지하여 반환지점에 당도하니

 

어떤 사람은

반환지점에서 내려가고

어떤 사람은 그 반환지점을 향해 올라오네

어떤 사람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기도

 

나뭇잎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햇살

인생은 힘들고 외로운 것만은 아니란다

   

 

 

낙엽을 밟으며

 

나무의 이력 같은

실핏줄 같은 잎맥이 선명한 이력서

널브러져 있다

 

젊은 날을 추억하며

바스락 바스락

빨간 노란 등불 켜준다

 

가을바람 한방에

머뭇거리던 단풍

철새 되어 날아가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때

어데서

싸락눈 소리 들린다

 

마지막 그의 문신이

대지위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떠나는 계절

 

계절은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는다

사소한 정 때문에

사랑이라는 입발림으로 발목을

붙잡지 않는다

 

여름 내내 무성했던 산야의 푸르름도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계절이 지나면서

떠난다

 

청청한 소나무도

화살촉 같은 꼬장꼬장한 잎을

머리카락 빠지듯이

아무도 몰래

대지 위에 내려놓는다

 

양탄자 같은 보드라운 길을 내어준다

산야는

떠나는 계절을

붙잡지 않는다

   

 

 

도두 포구

 

안개비 내리는 늦은 아침

출항하지 못한 배들이

나람히 나란히 누워있다

 

젊은 날의 열정도

삶의 치열함도

잠시 내려놓은 곳

 

침묵 속에 찰랑찰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노인*을 꿈꾸듯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길

기다리듯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노인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제목.

 

         *김순선 시집 바람의 변명’(시와 표현 시인선 046, 도서출판 달샘, 2017)에서

               *사진 : 측백나무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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