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그대들은 푸른 단비가 되어 - 곽민관

김창집 2017. 6. 6. 11:47



[현충일 추념시]

 

    ♧ 그대들은 푸른 단비가 되어 - 곽민관

 


비가 내리는 유월이 오면

그대들의 신음이 들립니다

비좁은 어깨로 책임을 짊어지고

끝도 없이 깊은 참호 속에서

잠 한 숨 들 수 없었던

그대들의 절규가 들립니다

 

비가 내리는 유월이 오면

그대들의 눈물이 보입니다

사그락대는 바람소리에도

기울어가던 이슬소리에도

잠 한 숨 들 수 없었던

그대들의 고통이 보입니다

 

하루하루 전우의 얼굴이 뒤바뀌고

매시간 포탄 구덩이를 메우는 주검과

천둥처럼 몰아치는 포화 속에

그대들은 천 갈래 만 갈래 찢겨나가

유월의 비가 되었습니다

 

그대들을 보낸 어머니는

뒷마당에 또독이는 빗방울에

황급히 문을 열어보고

모진 주름만 늘어가셨습니다

 

밤이면 뒤척이다

허전한 옆자리에 눈을 뜬

그대의 아내는

사무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젖도 떼지 못한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어미를 보며 미소만 지었지요

 

비가 내리는 유월이 오면

그대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직도 가파른 산등성이에 매달려

지천으로 메아리치는 비명이 들립니다

 

헐벗은 민둥산의 구덩이 속에서

애끊는 한마디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끝끝내 비가 되어 산화한

그대들의 마지막 외마디가 들립니다

 

울지 마소서! 겨레의 영웅들이여!

빗방울이 된 그대들은

메마른 강토를 적시고

푸른 생명을 피워냈습니다

 

초근목피에 헐벗은 가족을 감싸 안고

그들을 배불렸습니다

 

포탄에 벗겨진 민둥산을

부드러이 꽃피우고

수많은 아들, 딸에게

꿈의 그릇을 물려주었습니다

 

부디 울지 마소서! 겨레의 영웅들이여!

그대들이 잠든 대지에서

우리는 그대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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