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동백
울컥 내뱉곤 활짝
뒤끝은 없었다만
‘툭’
떨어져
밑구멍 닦을 것도 없었다만
“게메에”
그 한 마디면
붉힐 일도 없었다만
♧ 겨울 멀구슬
곶감 같은 겨울 해가
실눈에 걸린 오후
구십 평생 가가호호
꿰듯 산 풍경 속으로
저승 길 요령소리가
딸랑딸랑
들린다며
푸른 저 보자기 속
하늘이 궁금한지
침침한 눈 비비며
안경알 닦던 손목
금도금 자석 팔찌가
생의 빛을
잃어가네
조랑말 따라 나서던
연자주 열일곱 살
곱지 않은 곁가지로
온 식솔 그늘이 되어
먼저 간 지아비 앞에
이제 손을
내미네
♧ 귤 껍질을 벗기며
배꼽 아래 메스를 대고 꺼낸 신생아
주홍빛 살갗에 낀 백태가 엉겨있다
시큼한 배냇똥냄새 엄마에겐 향기다
♧ 강아지풀
그래도
수적으로 밀어붙이는 걸 보면
휘어져 산다는 게
타협만은 아닌 것 같다
실허리
바람에 굽힌
강
아
지
풀
강
아
지
풀
♧ 송악산 염소똥
송악산 가시바람엔
한약 냄새가 난다
산은 염소 똥을 먹고
염소는 산을 먹는다
굴러도 티 하나 안 붙을
저 성깔로 생겨서
쇠똥구리 집채만한
고집으로 살아온
험한 길 마다않고
절벽 타던 목마름이
바다빛 결백함으로
송악산에 뿌린 풀씨
한나절 무용담으론
끝이 없을 늙은 염소
이 빠지 저 외뿔로
터전 닦던 내력들이
송악산 벼랑 끝에다
말뚝 박아놓는다
♧ 손바닥선인장
나 하나
손을 펴면
집안이 다 편안한
그런 손이었으면
그런 날이 왔으면
가시 인
손바닥 모아
빌고 빌고
또
빈다
♧ 어머니의 신호등
때 알아
갈 줄 알고
때 알아
멈출 줄 알고
때 알아
기다릴 줄 알길
살강살강
손 비며
한두기
늙은 폭낭에
걸어놓던
지전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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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에 걸렸던 삼색(빨강 초록 노랑) 명주 천
* 이애자 ‘한라, 은하에 걸리어’(고요아침, '현대시조 100인선 77',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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