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한라, 은하에 걸리어'에서

김창집 2017. 11. 18. 10:11


제주 동백


울컥 내뱉곤 활짝

뒤끝은 없었다만


떨어져

밑구멍 닦을 것도 없었다만


게메에

그 한 마디면

붉힐 일도 없었다만

 


 

 

겨울 멀구슬

 

곶감 같은 겨울 해가

실눈에 걸린 오후

구십 평생 가가호호

꿰듯 산 풍경 속으로

저승 길 요령소리가

딸랑딸랑

들린다며

 

푸른 저 보자기 속

하늘이 궁금한지

침침한 눈 비비며

안경알 닦던 손목

금도금 자석 팔찌가

생의 빛을

잃어가네

 

조랑말 따라 나서던

연자주 열일곱 살

곱지 않은 곁가지로

온 식솔 그늘이 되어

먼저 간 지아비 앞에

이제 손을

내미네

 


 

 

귤 껍질을 벗기며

 

배꼽 아래 메스를 대고 꺼낸 신생아

 

주홍빛 살갗에 낀 백태가 엉겨있다

 

시큼한 배냇똥냄새 엄마에겐 향기다

     


   

강아지풀

 

그래도

수적으로 밀어붙이는 걸 보면

 

휘어져 산다는 게

타협만은 아닌 것 같다

 

실허리

바람에 굽힌

 

   아

    

  강

  

      풀

 


 

송악산 염소똥

 

송악산 가시바람엔

한약 냄새가 난다

 

산은 염소 똥을 먹고

염소는 산을 먹는다

 

굴러도 티 하나 안 붙을

저 성깔로 생겨서

 

쇠똥구리 집채만한

고집으로 살아온

 

험한 길 마다않고

절벽 타던 목마름이

 

바다빛 결백함으로

송악산에 뿌린 풀씨

 

한나절 무용담으론

끝이 없을 늙은 염소

 

이 빠지 저 외뿔로

터전 닦던 내력들이

 

송악산 벼랑 끝에다

말뚝 박아놓는다

 



손바닥선인장

 

나 하나

손을 펴면

집안이 다 편안한

그런 손이었으면

그런 날이 왔으면

가시 인

손바닥 모아

빌고 빌고

빈다

 


 

어머니의 신호등

 

때 알아

갈 줄 알고

 

때 알아

멈출 줄 알고

 

때 알아

기다릴 줄 알길

 

살강살강

손 비며

 

한두기

늙은 폭낭에

 

걸어놓던

지전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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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에 걸렸던 삼색(빨강 초록 노랑) 명주 천

      

 

        * 이애자 한라, 은하에 걸리어’(고요아침, '현대시조 100인선 77',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