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 임보
*신작시 20인 選 : 김영호 나병춘 윤석주 리상훈 박원혜 이규홍 도경회 안진영 백수인 손경 정온유 주선화 박동남 임미리 이주리 박병대 김종호 석연경 정유광 윤이
*신작 소시집 : 조봉익 *테마 소시집 : 장성호
*연재시 : 홍해리 *나의 시한 편 : 정공량 최한나
*시 에세이 : 전선용 여연 유진 *산문 : 임채우
*詩로 만나는 우리 들꽃 - 김승기 *한시한담 : 조영임
♧ 중앙선中央線 - 김영호
1967년 겨울 논산 벌판
배고픔 추위 기압의 훈련을 끝내고
양평 포병부대에 배치된 후 첫 외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마구 달렸다.
입대 사흘 전 낙상을 하여 누우신 노모老母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입영入營
고된 훈련 중에도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달려간 집,
문고리엔 자물쇠가 잠겨있고
어머니를 뵙지 못한 채
다시 귀대해야 했던 이등병.
밤마다 보초를 서면서도
새우잠 꿈속에서도 기적이 울면
그 기적을 따라 마냥 달렸다
온몸이 땀에 젖도록.
오십년이 지난 오늘도
중앙선 열차 뒤엔 한 신병이 달리고 있다.
♧ 아모르 파티 - 나병춘
감당 못할 마그마
활화산 같은
성난 사자의 포효 같은
아득히 밀려드는
광풍의 해일 같은
아무도 어쩌지 못할
운명,
오도 가도 못할
아모르 파티*
뚜벅뚜벅 걸어가리
낙타처럼
용감무쌍하게 맞으리
무소의 뿔처럼
기쁘게 맞이하리
철부지 아이처럼
운명아
어서 오너라
아모르 파티
---
*니체가 말한 ‘운명愛’,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세월만 축내다 - 윤석주
술을 곤죽이 되도록 퍼마시고 잠든 밤이면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머니가 산속으로 거처를 옮긴 뒤 마음 둘 곳 없어, 술독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그런 밤은 눈물 훔치는 어머니 환영으로 온몸 흥건히 젖기도 했다. 불행의 요소에는 크고 대단한 것보다 작고 하찮은 것이 마음을 더 휘어잡기도 한다. 이를 테면 잊지 못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잊어야 할 것을 오래 기억하는, 설명할 수 없는 낯섦 같은 것이 오래 가슴 속에 자리 잡아 생을 축내기도 하리라.
♧ 겨울, 개나리 - 이규홍
긴긴 밤 뒤척인다
잠들지 못하는 병
꽃 한번 피워보자
봄부터 앓더니만
함박눈
퍼붓는 날 밤
몸을 푼다, 노랗게
♧ 번지점프 - 안진영
인동초 넝쿨이 비탈을 지날 때
여자는 자신을 불러내
공중에 매단다
삐걱이는 빗장을 열고 나와
아슬아슬한 땅의 끝에서 퍼덕여 본다
촘촘히 자신을 조이던
뾰족하고 날카로운 세포들을
공중에 물감처럼 풀어 놓고 싶었다
진영아 같이 죽자
올가미에 묶인 채
끝도 없는 바닥으로
어딘지 모를 나락으로
녹아내리는 자신을 붙잡고서
꾸역꾸역 받아 삼킨 견고한 이름을
찬 호수 바닥에 쏟아 붇고 싶었다
푸드득 숲을 바라보는 멧비둘기로
멧비둘기 수천 마리로 하늘가득
날아오르고 싶었다.
♧ 소나기 - 손경
채
깨어나지 못한
내
꿈의
몸뚱이를
와락 흔들어
놓고
도망친
너
내
들뜬 가슴
잠재울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짐짓 모른 채
저
혼자
달아나는
너
♧ 머핀 - 정온유
너와 내가 마주 보며 모아둔 햇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동그란 우주 안에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아침이 환하다
시간과 시간이 마주보는 식탁에서
어제와 오늘이 겹쳐지는 공간에
고소한 하루 시작이 식탁 위로 가득하다
♧ 유등 - 주선화
하나의 출렁이는 불길만 보였다
돌아보면 불빛은 깊을수록 높아졌다
물길은 사방 벽이다
벽은 열 수가 없다
흐느끼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불멸하는 밤과 같이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눈동자 같이
* 월간 『우리詩』 2018년 1월호(통권355호)에서
* 사진 : 주목에 내린 눈과 소나무, 삼나무에 내린 눈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만복 시집 '그림자 지우기' (0) | 2018.01.16 |
---|---|
이종형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0) | 2018.01.14 |
'산림문학'이 만난 문인 - 김금용 (0) | 2017.12.31 |
산림문학 28호 초대시 (0) | 2017.12.28 |
오영호 시집 '등신아 까불지 마라'에서 (0) | 2017.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