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1월호의 시(1)

김창집 2018. 1. 11. 23:08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 임보

*신작시 20: 김영호 나병춘 윤석주 리상훈 박원혜 이규홍 도경회 안진영 백수인 손경 정온유 주선화 박동남 임미리 이주리 박병대 김종호 석연경 정유광 윤이

*신작 소시집 : 조봉익 *테마 소시집 : 장성호

*연재시 : 홍해리 *나의 시한 편 : 정공량 최한나

*시 에세이 : 전선용 여연 유진 *산문 : 임채우

*로 만나는 우리 들꽃 - 김승기 *한시한담 : 조영임

 


 

 

중앙선中央線 - 김영호

 

1967년 겨울 논산 벌판

배고픔 추위 기압의 훈련을 끝내고

양평 포병부대에 배치된 후 첫 외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마구 달렸다.

 

입대 사흘 전 낙상을 하여 누우신 노모老母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입영入營

고된 훈련 중에도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달려간 집,

문고리엔 자물쇠가 잠겨있고

어머니를 뵙지 못한 채

다시 귀대해야 했던 이등병.

 

밤마다 보초를 서면서도

새우잠 꿈속에서도 기적이 울면

그 기적을 따라 마냥 달렸다

온몸이 땀에 젖도록.

 

오십년이 지난 오늘도

중앙선 열차 뒤엔 한 신병이 달리고 있다.

 


 

 

아모르 파티 - 나병춘

 

감당 못할 마그마

활화산 같은

성난 사자의 포효 같은

아득히 밀려드는

광풍의 해일 같은

아무도 어쩌지 못할

운명,

오도 가도 못할

아모르 파티*

 

뚜벅뚜벅 걸어가리

낙타처럼

용감무쌍하게 맞으리

무소의 뿔처럼

기쁘게 맞이하리

철부지 아이처럼

 

운명아

어서 오너라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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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운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세월만 축내다 - 윤석주

 

  술을 곤죽이 되도록 퍼마시고 잠든 밤이면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머니가 산속으로 거처를 옮긴 뒤 마음 둘 곳 없어, 술독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그런 밤은 눈물 훔치는 어머니 환영으로 온몸 흥건히 젖기도 했다. 불행의 요소에는 크고 대단한 것보다 작고 하찮은 것이 마음을 더 휘어잡기도 한다. 이를 테면 잊지 못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잊어야 할 것을 오래 기억하는, 설명할 수 없는 낯섦 같은 것이 오래 가슴 속에 자리 잡아 생을 축내기도 하리라.

 

 

겨울, 개나리 - 이규홍

 

긴긴 밤 뒤척인다

잠들지 못하는 병

 

꽃 한번 피워보자

봄부터 앓더니만

 

함박눈

퍼붓는 날 밤

몸을 푼다, 노랗게

 


 

 

번지점프 - 안진영

 

인동초 넝쿨이 비탈을 지날 때

여자는 자신을 불러내

공중에 매단다

삐걱이는 빗장을 열고 나와

아슬아슬한 땅의 끝에서 퍼덕여 본다

촘촘히 자신을 조이던

뾰족하고 날카로운 세포들을

공중에 물감처럼 풀어 놓고 싶었다

진영아 같이 죽자

올가미에 묶인 채

끝도 없는 바닥으로

어딘지 모를 나락으로

녹아내리는 자신을 붙잡고서

꾸역꾸역 받아 삼킨 견고한 이름을

찬 호수 바닥에 쏟아 붇고 싶었다

푸드득 숲을 바라보는 멧비둘기로

멧비둘기 수천 마리로 하늘가득

날아오르고 싶었다.

 


 

 

소나기 - 손경

 

깨어나지 못한

꿈의

몸뚱이를

와락 흔들어

놓고

도망친

 

들뜬 가슴

잠재울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짐짓 모른 채

혼자

달아나는

 

 

 

머핀 - 정온유

 

너와 내가 마주 보며 모아둔 햇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동그란 우주 안에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아침이 환하다

 

시간과 시간이 마주보는 식탁에서

어제와 오늘이 겹쳐지는 공간에

고소한 하루 시작이 식탁 위로 가득하다

 


 

 

유등 - 주선화

 

하나의 출렁이는 불길만 보였다

 

돌아보면 불빛은 깊을수록 높아졌다

 

물길은 사방 벽이다

 

벽은 열 수가 없다

 

흐느끼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불멸하는 밤과 같이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눈동자 같이

 

 

                         * 월간 우리20181월호(통권355)에서

                         * 사진 : 주목에 내린 눈과 소나무, 삼나무에 내린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