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제주수선화 다시 피어

김창집 2018. 2. 17. 11:57



눈이 오기 전에 한창 피던

제주수선화가

눈이 오면서 입을 다물었더니,

 

눈이 그치고 일주일 여

따뜻한 날이 계속되자

다시 소담스럽게 피었다.

 

한겨울 벌 나비가 없어

꽃술이 꽃잎으로 진화해버린 것으로 보이는

제주수선화.

 

오늘 꽤 차가운 날씨에도

끄떡 없이 향기를 내뿜는다.

 

 

 

한라수선화 - 양전형

 

사랑한다라고 하는 건

글이 아니다

말이 아니다

생각도 춤도 아니다

잔즐대는 웃음이거나 불서러운 눈물도 아니다

사랑한다라고 하는 건

매서운 눈보라 힘겨운 날

너를 향해 이렇게

내 향기를 혼신으로 열며

가만가만 피는 것이다

마음의 길 따라 뜨겁게 올라와

그대 보도록,

그대 듣도록, 그대 맡도록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일이다

 

 

수선화에게 - 이민영


하늘과 땅 사이에는

그대가 살고 있다

그대라는 소망하는 것 들로

 

그래서 통 털어서 파란 하늘을 머금고

하얀 진초록을 닮아 온

온 세상의 여인이며

그대를 닮아서

사모하는 여인이며

모든 세태 벗기고 씻어도

그대에게는 이르지 못할 것 같은

 

하늘 한 가운데 순백純白하여

가물거리는 빛의

청순이라는 이름의

 

삼 백 예순 날을 지고도

그 겨울날 달빛을 머금어

그대라는 이름으로 내 얼굴 적셔준

단 한 분의 여인이여

 

그대 한 분으로

나의 겨울날은 그리움으로 행복했나니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고재종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 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수선화 - 박정순


눈부시지 않은 모습으로

뜰 앞 정원의 모퉁이에서

봄을 안내하는 등을

아프로디테

가녀린 몸매로

긴 겨울 어이 참아내었는지

무명의 어둠 끌어안고

삭이고 삭인 고통의 흔적

그 얼굴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구시렁거리지도 않은

또 다른 별의 모습으로

꽃등을 켰다

항시 화려함이 아름다움은 아니듯

은은히 존재를 밝히는

가녀린 모습 앞에

마음도

한 자락의 옷을 벗고

노오란 향기와 모습 앞에

얼룩진 내 삶을 헹군다



수선화 - 이재훈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을 잘 무렵이면, 내 몸에 꽃씨 앉는 소리가 들린다, 간지러워, 암술과 수술이 살 부비는 소리가 사물거리며 온몸에 둥지를 틀고, 어머 꽃피네, 마른버짐처럼, 간지러운 꽃이 속옷 새로 피어나네, 내 몸에 피는 꽃, 어머 내 몸에 핀 꽃,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노랗게 물든, 수선화가 핀다, 아름다운 내 몸, 노랑 꽃파랑이 쓰다듬으며 어깨에서 가슴으로 배꼽으로 핀 꽃과 입맞추고, 시커먼 거웃 사이에도 옹골지게 핀 꽃대 잡는다, 아아, 아 에코가 메아리치네, 아름다운 내 몸, 거울에 비추어, 아아아 에코가 흐느끼네, 내 몸이 하분하분 물기에 젖네, 꽃들이 더펄거리며 시들어가네, 나르키소스여 내 몸에 오지마소서 五慾에 물든 몸 꽃피게 마소서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