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계획에 없는 한라산 산행을 하였다.
하긴
감성치유 코스 개발로
날씨 때문에 뒤로 미뤘다가
마지막으로 가게된 것.
아직
제비꽃, 양지꽃, 세바람꽃, 설앵초, 흰그늘용담,
구름미나리아재비 같은 몇몇 이른 봄꽃 외에는
진달래, 철쭉은 덜 피어 있었다.
우리가 오른 영실코스에는
싱싱한 구상나무는 잘 안 보이고
고사목만 늘어간다.
한라산 철쭉제는
오는 6월 3일 일요일이라고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 한라산 까마귀 - 한도훈
뻐꾹채 엉겅퀴 도채비운장이
백록담 멧부리로 나란히 줄 서고
산그림자 사이로 얼굴 빼꼼 내밀다
빙애기 채가듯 똥소리기 발톱에 채인
생채기 난 햇살이라
한라산 까마귀떼
갈보름에 휘날리는 검은 날개로
머리 풀어헤친 여인상이 뚜렷한
한라산 꼭대기며
신선(神仙)의 집, 영실기암을 휘저으면
멀리 서귀포 바당으로부터
안개꽃은 시샘으로 피어올라
윗세오름 노리샘 언저리
주목나무숲 너덜바위에
한 무데기 한숨 따위 부려놓으라
한라산 까마귀 서늘한 이망생이에
와들락와들락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지면
숨비소리 비바리 사랑으로
천년의 이끼
만년의 이끼 청동거울을 닦으라
벌거벗은 태양을 인두로 지져
가슴 떨리게 하면
비룽비룽 흐르는 용천수는
불로불사야약(不老不死藥)으로
호루종일 쏟아지는 정방폭포가 되고
흰사슴 징검징검 백록담을 걸을 때
갈래죽으로 움푹 떠
설문대할망 스란치마 속에 쏟아붓고
똥소레기 부리로 콕콕 쪼아 만든
성산일출봉이며 산방산을 불러 모아
해마다 봄이면
호꼼 진달래꽃 영쿨로 춤추게 하라
---
* 도채비운장 : 산수국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빙애기 : 병아리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똥소리기 : 솔개의 제주도 방언
* 갈보름 : 서풍에 대한 제주도 방언
* 바당 : 바다의 제주도 방언
* 노리 : 노루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이망생이 : 이마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와들락와들락 : 와당탕와당탕의 제주도 방언
* 숨비소리 : 해녀들이 잠수를 끝내고 나와서 내지르는 숨소리.
* 비바리 : 처녀의 제주도 방언
* 비룽비룽 : 구멍이 송송이라는 제주도 방언
* 호루 : 하루의 제주도 방언
* 갈래죽 : 흙을 파는 삽에 대한 제주도 방언
* 설문대할망 : 한라산을 만든 할머니
* 똥소레기 : 독수리의 제주도 방언
* 호꼼 : 조금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 영쿨 : 넝쿨의 제주도 방언
♧ 한라산 고사목 - 김정호(美石)
너, 푸른 이파리 하나 없어도
아직 숨죽이고 서 있는 것은
언젠가는 마른 눈물 흘릴 수 있기 때문이지
더 이상 높은 창공으로
솟구쳐 오르지 못한 까마귀 떼
안개구름 사이로 내려온 좁쌀빛에
젖은 날개 접고
헐벗은 가지 위에서 사랑을 나눈다
새벽녘 아무도 모르게 차 오르는
끈끈한 해의 혀를
널름 널름 받아 마셔도
몸에는 따뜻한 기운 사라진 지 오래
화려한 꿈으로 치장했던
젊은 날의 푸른 혈기 기억하지 마라
그 환한 비명 지르지 마라
백록담 시린 바람이 끝이
네 목덜미를 겨눌지라도
똑바로 일어나
세상을 굽어보아야지
♧ 한라산 중턱에서 - 정재영(小石)
빛나는 밤하늘
별들을 잡고자
유혹하는
산정
죽 한 그릇 속의
어머니 설움은
오백 나한의
통곡하는
바람 소리
바람
구름
안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신화는
엉겨붙어 내리는 비
멀리
서귀포
애향의 오두막집
한 칸 방에서
저녁연기로 솟는
황소의 울음
♧ 한라산 고사목 - 정군수
백록담 돌아 한라산을 내려오다가
안개를 뒤집어쓰고 서있는 고사목을 만나다
두 팔 벌리고 누구를 기다리다
한 백 년쯤 누구를 기다리다
와락 나를 껴안는다
고사목의 고독이 뼈 속을 스민다
나는 팔 벌리고 서있는 고사목
내 피가 고사목에 흐른다
나는 본다
나를 두고 하산하고 있는 고사목을
나는 안다
마을로 고샅으로 쏘다니다가
그 여자집 불빛도 넘겨다보고
남제주 푸른 바닷물에 얼굴도 비춰보고
나는 기다린다
버리지 못한 번뇌
인간에게 주어버리고
허위허위 입산하는 발가벗은 사내를
♧ 산 사람은 소주를 마신다 - 권경업
슬픔이 흐르던 산
기쁨이 일어나던 산
그리운 산 그리운 님
못내 그리다가
도회의 뒷골목
옛 산친구를 만나
어느 선술집 쪽탁자에서
노가리목 비틀어 잡고
그리움을 달랠까
소주 싫어하는 산사람 없지
산쟁이 마음처럼 투명한 액체
마시는 만큼 솔직하게 취하는 술
슬픈 이야기에 슬퍼하고
기쁜 이야기에 기뻐하며
쪽탁자 모서리에 쌓여가는 빈 병
장구목 눈사태에 묻히고
설악골에서 동지의 주검을 메고
소주병 씻어 마시던 12탕
새벽녘 부채바위 밑에서
동문으로 술 사러 가도록
빈병 하나하나마다 취한
옛 이야기가
백두대간 종주하는
나그네의 발길에 채인다
---
*장구목: 제주도 한라산 용진각 대피소에서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길목의 고개.
*설악골: 설악산 비선대와 천화대능선 사이의 계곡. 겨울에 이곳에서 빙벽등반이 이뤄진다.
*12탕: 내설악 남교리에서 출발하는 12선녀탕계곡의 통칭.
*부채바위: 부산의 대표적 암벽훈련장. 금정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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