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시조' 제27호의 시조 2

김창집 2019. 2. 2. 16:57


김녕리 바다 - 김향진

 

해안가에 산이 있다 그 이름은 두럭산

썰물도 아주 썰물 삼월 보름 물때쯤

물질 간 삼촌 넋인가 숨비소리 떠돈다

 

일본에서 만났다 김녕리가 고향인 사람들

바지게 지고 가듯 휘어진 한 생에도

섬처럼, 오직 섬처럼 더럭더럭 울고 간다

 

김녕리 해변에 술 한 잔 따라 놓고

묘산봉도 함께 불러 안주처럼 펼쳐놓고

바다는 일 년에 한 번 망향가를 들려준다

   

 

 

종달리 수국 - 한희정

 

해안길 수국에선 짠 내가 가득하네

한바탕 몰려왔다가 소금기만 남겨 놓은,

장맛비 젖은 곱슬이 연륜만큼 처졌네

 

평생 찔린 현무암 위에 맨발로 나 앉아서

진저리날 것 같은 바다 향해 웃고 있네

절망도 한 몸이 되어 삶의 무게 보탰던

 

열 길 물속 저승길을 평생 오간 늙은 해녀

즐거움도 괴로움도 소홀한 적 한번 없듯

의연히 빗속에 앉아 보살의 미소 짓고 있네

   

 

 

곤을동* - 김미정

 

별도봉 오름자락 푸른 해안을 끼고

 

떠나고 남은 이 없이 잡풀들 무성한 곳

 

어디서 길을 잃었나, 어느 곳을 헤매나

 

곤을동 잠 깨어 물 위에 떠오르면

 

울담이 놓인 자취, 뿌리로 닿는 기억

 

바람은 고요를 삼키고 귀먼 신을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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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화북동 서쪽에 있었던 마을.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짐. 43사건 당시 잃어버린 마을이 대부분 중산간 마을인데 비하여 곤을동만은 해안 마을임에도 군인 토벌대에 의해 방화되고 복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금오산 대혜폭포 - 박방희

 

초입부터 심상찮다, 궁궁 울리는 땅

알 수 없는 당김에 마냥 끌려가듯 오르면

한 줄기 길이 나 있어, 길은 사람을 몰고 간다

 

길이 지워진 곳에선 소리가 등을 댄다

이 오르막 끝은 하늘일까 무간지옥無間地獄일까

서늘한 하늘 숨소리 점점 더 거세지고

 

이윽고 고막을 찢으며 폭발하는 굉음轟音

아수라 땅에 걸리는 순백의 장광설長廣舌

! ! ! 세상을 때리는 저 쉼 없는 북채!

   

 

 

머체왓 메밀밭 - 이정환

 

서러워도 서러워도

저리 서러울 수가

 

먼저 떠난 이들의

형형한 눈빛 같은

 

머체왓

하얀 메밀밭

눈물꽃 방울방울

 

그날의 피비린내

그날의 아비규환

 

다 알리, 한라산은

늘 목 놓아 우는 산

 

머체왓

하얀 메밀밭

이슬 내려앉는다

   

 

 

호박 - 조동화

 

불볕에 달아오른 돌담 위를 기어가며

한생 잎도 꽃도 사랑받지 못하고

줄줄이 낳은 자식마저 비명에 보낸 에미

 

그예 서리가 내려 온몸이 말라가도

늦둥이 두어 놈만은 한사코 젖을 물려

이 세상 가장 큰 열매 하늘가에 얹는다

   

 

 

파도 - 조명선

 

위험스런

광녀의 깔깔대는 관능이다

 

뜨겁게

밟고 가는 절묘한 떨림이다

 

환장할!

오르가즘의

숨 막히는 간통현장

   

 

 

주상절리 동해에 눕다 - 이익주

 

철철이 읊어대는

기다림의 숨결이다

건져 올린 뼈들의

이유 있는 도열이다

잔잔한

동해바다의

무거운 숨비소리

 

온몸으로 울어 봐도

돌아누운 저 바다는

천리 먼 길 단을 쌓아

이 저승을 이어놓고

요절난

만선의 축원

도막난 채 누워있다  

 

                      *제주시조시인협회제주시조2018 2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