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할 일은 유난히 많은데
6월은 벌써 와버렸다.
벌써 방안은 덥고 음습해 지고
조금만 앉아 있어도 몸이 찌뿌둥하다.
길거리에 나서면 할 일 없이 오가는 사람 그렇게 많은데
나만 그렇게 조바심하며 살고 있나 몰라.
하루에 한 가지 일만 생각하자고 해도
마음만 번잡하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하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경험 안했는가?
때를 당하면 당한 대로 그럭저럭 일을 처리하며 살아왔다.
아무려면 어떠랴.
주워진 하루 능력껏 살면 그만인 것을.
♧ 6월에는 - 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 6월 - (宵火)고은영
네가 푸르면
문득 내가 더 푸르러지고
네 가쁜 숨결로
찬연하게 내뿜고 사정하는
애액만으로도
이 얼마나 찬란한 행복이냐
이 얼마나 황홀한 전율이냐
태초부터 너는 날 위해
만들어진 지극한 사랑
부족한 날 위해 준비된 성찬
♧ 유월 - 배귀선
푸른 신록 미끄럼질 쳐올 때
바람에 담긴 6월의 냄새
노오란 감꽃진 자리마다 몽당몽당 열매를 달고
따가운 햇살 한 움큼 바람에
청보리 노랗게 익는 한낮
감자꽃 가득한 흰 들녘엔
느린 걸음의 황소가 지난다
뒷산 밤나무 꽃 흐드러지게 피면
짧은 밤 뒤척인 졸음을 못 이겨
빛깔 짙어지는 그늘을 빌려 잠시 쉬어가도 좋으리
멀리 산자락 마을이 액자 속 풍경으로 걸어올 즈음
나는 유월의 시를 쓴다
♧ 6월을 걸어가며 - 이향아
6월의 숲은 성년의 아침
그들은 윤무를 추듯 서로의 어깨를 겯고
멀고도 깊은 하늘을 받들어 섰다
얼마나 오랜 묵상으로 저토록 푸르렀을까
수도자처럼 의연한 안색
기도하는 것처럼 결곡한 몸짓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굽힐 때의 저 숙성함
우러러 사모할 때와 나부낄 때의 저 지극함
유월의 숲길을 걸을 때면 저절로 목소리가 낮아진다
혹시 흉이라도 잡힐까 봐
아침저녁 다른 내 변덕을 들키고
사소한 근심걱정 그칠 날 없는 좁은 소견을 들키고
무질서와 번잡과 소요를 들킬까 봐
숲길을 걸을 때면 나는 옷매무시를 가다듬는다
나무들이 수런수런 잎을 건사하면서
제 몫의 타고난 아량으로 비바람을 막고
뿌리와 내통하며 씨앗을 품는 동안
나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유월 숲길을 걸을 때면
움도 싹도 가당치 않아라
허공의 쓸쓸한
이름 하나 마주친다
♧ 6월의 향기 - 임영준
찬란한 아침이면
족하지 않은가
가만히 있어도
응어리진 채 떠난 수많은 이들에겐
짙은 녹음조차 부끄러운 나날인데
남은 자들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게다가 어찌 모두
빨간 장미만 쫓고 있는가
그래도 묵묵히
황허한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건
이름 모를 나무와 한결같은 바람인데
가슴을 저미는 것은 풀잎의 노래인데
유월에 들면 잠시라도
영혼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 6월 바람 - 성백군
바람이 분다
6월 바람
봄과 여름 샛길에서 이는
틈새 바람이 분다
봄 꽃향기 대신 여름 풀 내가
내 몸에 풀물을 들인다
이제는 젖내나는 연두 아이가 아니라고
짝을 찾는 신랑 신부처럼 초록이
내 몸을 핥고 지나간다
풀들이 일어서고
이파리가 함성을 지르고
나는 그들과 함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바람을 맞으며 심호흡을 한다.
하다,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주눅 든 것이 없다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잘 섞인 신록이다
서로의 공간을 내어주며 배려하는 적당한 거리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넉넉한 모습
다 6월 바람이 만들어낸 싱싱함이다
서로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지만 그게 사는 모양이라서
막히면 안 된다고,
벌컥벌컥 봄 여름 소통하느라
6월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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