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제주작가' 66호의 기획 시

김창집 2019. 10. 23. 09:30


 ‘제주작가’ 66(2019년 가을호)가 나왔다.

 긴급으로 마련한 기획연재 - 제주, 환상을 겨누다의 시들.

 

 제주도 곳곳은 몸살을 앓고 있다. 오름과 곶자왈 등 여기저기서 들리는 기계음들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무와 숲이 뿌리를 내리던 곳에 수많은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고 있다. 이런 행위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사람보다 더 먼저 제주에 터를 잡고 있던 자연도 사라지고,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도 사라지고, 끈끈한 공동체도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행위를 누군가는 제주를 파괴하는 일이라 호소하지만, 누군가는 제주를 유용하게 만드는 개발로 포장한다. 서로 다른 이름을 내세우면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제주를 평화의 섬이 아니라 갈등의 섬으로 만들고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문학의 소임이다. 그래서 개발과 관련한 제주현안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호에는 제2공항 문제를 다룬 제주작가 회원들의 작품을 게재한다.

    

 

 

토건의 꿈 김경훈

 

토건이야말로

경제를 살리고 정치도 살리는 사업이다

일찍이 미국의 뉴딜정책이 있었고

이걸 박정희가 먼저 깨우쳤다

그리고 이명박이가 따라 했다

 

토건은 정권의 젖과 꿀이다

여기서 권력이 나오고

여기서 실탄이 나온다

대권의 시작이야 바로 여기 토건에 있고

토건이 정권을 만든다

아무리 단식투쟁하고 천막농성하고

길거리 시위를 해도

이것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절대 멈출 수 없는

절대지존의 사업이다

 

자 보라

내로라하는 굴지의 토건기업이나

제주의 건설업체들 그리고

덤프트럭 포클레인 기사까지도

이 사업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과잉된 생산은 필연 공황을 낳는다

공황은 전쟁을 예비한다

전쟁은 파괴와 동시에 건설의 토건을 부른다

토건은 죽지 않고 영원히 계속된다

이것이 토지 자본 영생의 꿈이다

 

그러나 꿈 깨라

계란이 바위를 뚫는다

단식투쟁이 토건의 댐에 균열을 낸다

천막농성이 토건의 철근을 뒤흔든다

길거리 시위가 토건의 도로를 점령한다

 

이 천박한 자본을 도려내는 것이 경제 민주화다

이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는 것이 민주정치다

이 예비된 공황과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이 토건의 영원한 자기 복제를 차단하는 것이

이 토건을 당장 멈추게 하는 것이,

 

이것이 평화다!

    

 

 

제주신공항 김광렬

 

그것은 끈질긴 힘 빼기 전략이다

적의 요충지를 함락하기 위해

철옹성을 포기한 채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십 년이든

적을 아사 직전까지 몰고 가는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게 만드는 심리전술이다

 

한국인에게는 냄비근성이 있으니

곧 포기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성산읍 신산 난산 온평 수산 고성

그깟 몇 개 마을쯤 뒤엎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말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라고

 

밭담을 깔아뭉개는 것도

숲을 갈아엎는 것도

오름을 절단 내는 것도

집들을 허무는 일도

민심을 흉흉하게 한 일도

자신을 난도질하는 일인 줄은 모르고

명예니 업적이니 이익이니 주변 정세니 하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새 활주로를 만들어야겠다고

꽈르릉거리며 번쩍번쩍

비행물체를 날려 보내고야 말겠다고

집요하게 덤벼들던 그들,

파괴습성은 또 다른 파괴를 낳아

피괴, 파괴, 파괴, 파괴

언젠가 제주는 목숨 줄 끊고 말리

그때 누가 죽은 자연을 보러

그 머나먼 길 허위허위 달려올까

    

 

 

노아의 방주처럼 김섬

 

짓자

다 짓자

마을 밀엉 활주로 짓고

오름 밀엉 으까번쩍 여객청사도 짓자

저 어느 이장은 7억 받고 마을을 넘겼다 하고

저 아무개는 2천 평 넘기고 몇 십 억 챙길 예정이라는데

고향이 대수라 태손땅이 대수라

짓자

다 허물고 짓자

다 허물고 다 짓고 다 죽자

챙긴 너도 죽고 못 챙긴 나도 죽고

모조리 묻히자 그리하여

묻힌 자리마다 새순만 돋게 하자

눈물에 씻긴 오롯한 새순만 고이 자라게 하자

짓자 다 죽자  

    

 

* 요즘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드는 게 어디 공항이 좁아서인가. 이쯤에서 제주 관광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자. 혹여 나에게 이익이 돌아와서? 내가 사둔 땅이 값이 올라갈 거라서? 아님 지금까지처럼 개발이 곧 부()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제주 섬의 장래를 생각할 때다. 이제껏 난도질하던 한라산 기슭, 더 이상 상처를 내면 그 상처로 침입하는 온갖 나쁜 바이러스를 감당하기 힘들다. 이제는 관광도 양보다 질로 승부할 때다. 가뜩이나 쓰레기 처리 난으로 몸살을 앓는 땅이 아닌가?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억센 힘이 작용해서? 혹여 미국 공군기지는 아니겠지? 해방이 되자마자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반공전선을 구축하려고 자기 필요에 의해 주둔했던 미군은 이제 장사치로 둔갑해서 엄청난 댓가를 요구하고 있다. 빼도 박도 못할 일이 어디 우리 의지에 의해서 시작되었던가?

 

 어떤 사람은 해군기지와 공군기지가 들어서면 얼마나 든든하겠냐고 한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다. 무서워서 접근을 못한다고? 아니, 이제는 그게 제일의 공격목표가 된다. 그 가공할 무기의 살상반경이 어디 전투기지에만 미칠 것인가? 섬 자체가 폐허가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지금이 중요하다. 시작부터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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