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의 스물한 번째로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있으나
글자 그대로 눈이 엄청나게 오는 건 아니라 한다.
왜냐 하면,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자 기준 지점으로 대륙 깊숙한
중국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로는 오늘 오전에 서울과 경기도,
강원 영서에 눈 또는 비가 내리겠다는데….
어떻든 12월도 일주일째인 주말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남은 날짜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 대설주의보 - 임영준
막힌 가슴
실마리도 없는
거친 땅
가뜩이나
거북한 일상을
철부지들이
좌지우지하는데
족히
몇 날쯤 덮어두는
눈 천지는 어떨까
민심도 천심도
잠시
순백이 되는
은근히 고대하는
대설주의보
♧ 대설(大雪) - 엄원용
오늘은 대설
절기 따라 눈이 내린다.
온 마을과 마을
부드럽게 감싸며
토닥이며 덮어 내리는 눈
한여름 이글이글
지독하게 타오르던 욕망들이
한꺼번에 흰 치마폭 속에 포근히 잠재워
잠시 부끄러움 가릴 수 있겠다.
이제야 순수 하나쯤 품어볼 수 있겠다.
♧ 대설大雪 - 오보영
너 오는 날 미리 알고
선조들이
달력에 기록해놓은 이유를
오늘 네가
가는 길을 막아서니 알겠구나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놓으니
오래 기억될 수밖에
이런 내 맘은 아랑곳없이
그저 저만 좋다고
마냥 좋아 흩날리는 널 보고 있노라니
좋아하던 모습조차
미워지려 하누나
♧ 대설 주의보 - 草岩 나상국
절름발이 해가
지친 모습이 역력한 걸음으로
하루를 마감하려는 듯
턱에 걸린 거친 숨 토해내며
절뚝절뚝 산능선을
기어오르고 있다
해 떨어진 바다
밀물처럼 밀려든 어둠을 틈타
내려앉는 저것은
헐벗고 굶주린
지구를 구출하러 온
게릴라 침투조의
하얀 낙하산 부대
검은 지구를
하얗게하얗게 점령해 간다
♧ 대설 - 고재종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꺾는 것이다
또 한잔 꺾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詩' 12월호와 박주가리 씨앗 (0) | 2019.12.11 |
---|---|
한라산에 핀 상고대 (0) | 2019.12.10 |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와 한란 (0) | 2019.11.30 |
김진숙의 가을시편 (0) | 2019.11.23 |
안상근 시집 '한 컷 제주 100' (0) | 2019.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