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대설大雪 아침에

김창집 2019. 12. 7. 08:32


24절기의 스물한 번째로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있으나

글자 그대로 눈이 엄청나게 오는 건 아니라 한다.

왜냐 하면,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자 기준 지점으로 대륙 깊숙한 

중국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로는 오늘 오전에 서울과 경기도,

강원 영서에 눈 또는 비가 내리겠다는데.

 

어떻든 12월도 일주일째인 주말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남은 날짜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대설주의보 - 임영준

 

막힌 가슴

실마리도 없는

거친 땅

가뜩이나

거북한 일상을

철부지들이

좌지우지하는데

족히

몇 날쯤 덮어두는

눈 천지는 어떨까

민심도 천심도

잠시

순백이 되는

은근히 고대하는

대설주의보

    

 

 

대설(大雪) - 엄원용

 

오늘은 대설

절기 따라 눈이 내린다.

온 마을과 마을

부드럽게 감싸며

토닥이며 덮어 내리는 눈

한여름 이글이글

지독하게 타오르던 욕망들이

한꺼번에 흰 치마폭 속에 포근히 잠재워

잠시 부끄러움 가릴 수 있겠다.

이제야 순수 하나쯤 품어볼 수 있겠다.


  

대설大雪 - 오보영

 

너 오는 날 미리 알고

선조들이

 

달력에 기록해놓은 이유를

 

오늘 네가

가는 길을 막아서니 알겠구나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놓으니

 

오래 기억될 수밖에

 

이런 내 맘은 아랑곳없이

그저 저만 좋다고

 

마냥 좋아 흩날리는 널 보고 있노라니

 

좋아하던 모습조차

 

미워지려 하누나

    

 

 

대설 주의보 - 草岩 나상국

 

절름발이 해가

지친 모습이 역력한 걸음으로

하루를 마감하려는 듯

턱에 걸린 거친 숨 토해내며

절뚝절뚝 산능선을

기어오르고 있다

해 떨어진 바다

밀물처럼 밀려든 어둠을 틈타

내려앉는 저것은

헐벗고 굶주린

지구를 구출하러 온

게릴라 침투조의

하얀 낙하산 부대

검은 지구를

하얗게하얗게 점령해 간다

    

  

대설 - 고재종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꺾는 것이다

또 한잔 꺾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