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김수열의 '물에서 온 편지'

김창집 2020. 4. 16. 12:39

 

♧ 물에서 온 편지 - 김수열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고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긴 지번을 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낸다

 

아들아,

올레 밖 삼도전거리 아름드리 폭낭은 잘 있느냐

통시 옆 먹구슬은 지금도 토실토실 잘 여무느냐

눈물보다 콧물이 많은 말잿놈은

아직도 연날리기에 날 가는 줄 모르느냐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질질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어섰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

 

네가 거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듯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어

그게 슬픔이구나

봉분 하나 없다는 게 서럽구나 안타깝구나

그러니 아들아

바람 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 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내거라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 그리운 소식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

 

 

♧ 바닷물은 쓰다

 

칠성판 등에 지고 저승문턱 오락가락

반세기 넘도록 바당밭 일구다

대상군 자리 큰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집에서 노느니 할망바당에라도 나가

물질 나간 큰며느리 대신

오물조물 보말 잡아 저녁 찬거리 장만하는

소섬 할머니는

바닷물이 쓰다 하신다

 

모르는 사람들은

바닷물이 짜다 하는데

소섬에서 나고 소섬에서 자란 소섬 할머니는

바닷물이 쓰다 하신다

 

 

 

♧ 슬픈 문자

 

시인을 남편으로 둔 어느 선생

세월호 참사 1주기 맞아 학생들에게

동영상으로 시 한 편 소개하고 감상을 묻는데

한 학생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하더란다

 

요즘도 시인 있어요?

시인은 뭘로 돈 벌어요?

 

핸드폰 문자로 그 내용 전해 받은 시인

요즘 시가 읽히지 않는 것보다

시집이 전혀 팔리지 않는 것보다

시인으로 산다는 게 더 슬펐다

 

혼자 슬퍼서 홀로 마셨다

 

 

            * 김수열 시집 『물에서 온 편지』(삶창시선 49, 2017)에서

                              * 사진 : 2016년 9월, 팽목항에서

 

 

-- 세월호 6주기를 맞는 날이다.

    사고당일 나는 답사여행 차 캐나다에 있었다.

 

   캐나다 방송과 신문들은 하나같이

   자칭 ‘조선(造船) 왕국’이라 하는 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이 안 된다’는 투의

   비아냥 일색이었다.

 

   학부모나 살아남은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놀러가던 학생들의 사고(事故)에

   나라가 무슨 책임이 있는가,

   그 정도 해줬으면 말지.’ 하는 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걸 모르는가?

   사고의 전모를 밝히고,

   앞으로 그런 식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안타까운 하소연을….

 

   삼가 세월호에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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