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황매산 철쭉을 추억한다

김창집 2020. 4. 26. 07:57

코로나19 난리로

경남 합천군에서 5월초로 예정되어 있던

황매산 철쭉제가 취소되었다는

기사를 보며

문득 지난 2016년 4월말에 다녀온

황매산 철쭉을 추억해 본다.

 

덕만주차장에서 상봉과 삼봉을 거쳐

황매봉에서 내리면서

펼쳐진 철쭉군락지

어떤 사람들은 차로 캠핑장까지 왔다던데

우리는 코스를 따라 걸어와

의미 있게 철쭉과 만났다.

 

아직 만개는 안 되어있었지만

사뭇 부끄럽게 벌어지는 철쭉에게 말을 걸며

다음에 활짝 필 때

다시 만나자고 기약했었다.

 

♧ 철쭉 - 윤인구

 

멋대로 스러져도 좋겠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연분홍 꽃향기

버거운 숨 잠시 놓아버릴까

아니야 나는 쑥국새가 아니야

 

간밤에 황매산에 비가 내려서

이봐요, 지난밤 고독을 얘기합시다

지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그만

툭 툭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네

 

새파란 열일곱 살

장박리 부잣집에 시집가더니

골골거리던 서방님 죽고 탈상도 안지나

떡갈재 철쭉꽃 몸살나게 붉던 날

쑥꾹 쑥꾹새 따라 달아났다고

 

멋모르고 온 산에 꽃불을 질렀네

때가되면 시들어 지고우는 꽃이 아니야

어느 봄날

미련없이 꽃잎을 벗어버리지

진한 연분홍 꽃향기속에 묻히고 싶었네

쑥꾹 쑥꾹 애타는 쑥국새 울음소리

온 산에 꽃불을 질러대는

 

♧ 상어 – 최남균

 

황매산 철쭉이 봄물 게워놓을 때

사람들은 봄맞이 가고

도시의 상어는

몸을 비틀어 바다의 비린내를 게워낸다

깜박거리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형광등이 켜지는 순간

빛의 파장에서 적외선을 보았다

지느러미가 스치기만 해도

철쭉이 바람결에 선혈을 뿌리듯

주변을 붉게 물들였던 지난 세월

보라색 언저리에 오만한 비웃음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빛깔을 보았다

허울 좋은 갑옷이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던가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마다 칼을 갈 듯

날카로운 명분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던가

상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산다는 사실이

거짓이라고 말했던 그 입에서

메아리치는 파도를 게워내고 있다

 

♧ 사월에는 - 송정숙(宋淑)

 

살금거리며 오는 걸음

어찌나 가벼운지

아직 겨울인가 했는데

개나리 피고 목련이 피고

다시 안 올 육십 번째 계절은

이렇게 빨리 와 있더이다

 

노랑 흰색으로 채색된 바람

잠결인 나무를 깨우고 다니면

나무보다 먼저 길을 나서는 사람들

바다에서 만난 사람은 마음이 넓고

숲길에서 만난 사람은 정이 많다

 

어떤 이는 섬진강에 가있고

어떤 이는 철쭉제에 가있고

어떤 이는 그저 무작정 떠난다고

또 하나의 어떤 이인 나는……

 

어우러짐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월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풀잎 하나 작은 꽃잎 하나

모두가 경이롭다

 

♧ 지리산 철쭉제 - 강현옥

 

일제히

일어서서

살아있음을 알리는

야생화 무리

끝없이 퍼진

아지랑이 바라보며

어깨춤을 춘다.

 

철쭉제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심술부리듯 뿌리는 안개비

재촉하던 젖은 그리움들

바위의 이끼처럼

온 몸으로 비를 맞는다

 

철쭉의 혼을 달래는 날

하객들은

산이 시작되는 산문에 앉았다

하나 둘

청사초롱불을 끄고

빗물처럼 스스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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