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동창들과 지리산 주변 나들이

김창집 2019. 9. 16. 19:24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아온 고교 동창생들

다리가 떨릴 때 떠나려 말고

가슴이 떨릴 때 가보자고

뭍 나들이 몇 차례 하다 보니

이제 눈이 조금 뜨여

이번엔 지리산 자락이라도 가보잔다.

 

누구의 명령이고 소원인가?

그래도 덕유산이나 팔공산은 케이블카에 의지해

적당한 곳에 올라 구경시켰지만

지리산은 그런 곳이 없어

성삼재에서 노고단 정도 다녀오자고

먼저 머리에 놓고

구례 산수유마을에서 온천 시키고

피아골 정도 들어갔다 오고

구례나 화개장터에서 장구경이나 시키고 오면

되지 않겠나 싶어 대충 짜 보았다.

 

여행 계획을 짜긴 짰지만

칠순을 넘긴 놈들이니,

가다가 좋은 거 만나면 보고 먹고 쉬고

꼭 계획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구색은 갖추어야 하기에

주변 좋은 곳들 찾아 채워 보았다.

    

 

 

1. 일시 : 2019917()~ 919() : 23

2. 여행일정

   *9/17(남원) 제주출발 - 09:30 광주도착. 남원(점심) - 광한루원

                          - 성삼재에서 노고단(왕복1km) - 구례(1)

   *9/18(구례) 화엄사 - 5일장 - 운조루 - 피아골 - 하동(1)

   *9/19(하동) 쌍계사 - 최참판댁 - 화개장터 - 식영정 - 광주공항

            -19:25 대한항공 광주 출발 - 20:20 제주공항 도착 해산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화개장터에서 - 유소례

 

그때 화개장터 앞

섬진강 언덕배기 노숙의 밤이었지

 

동란의 비극 괴뢰의 총구에 조준된

청소녀 시절, 너와 나

불현듯 피란의 대열에 끼어

무작정 남으로 가던 길목이었지

 

단발머리 단벌의 교복을 입은 여름 밤

돌건반 치는 섬진강의 물소리를

소야곡처럼 껴안고 담청색 하늘에 새파랗게 튀는

별들의 이야기 속에 내일을 잊었던

천진한 온 밤의 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위급한 총성이 난무하던 고달픔도

우리의 마음, 함께하던 길이었기에

두려움도 외로움도 몰랐던 기억이

아득한 전설처럼 피어나는구나

 

그 기억을 한 톨 한 톨 주우며

나는 가슴 아파 울먹이지만

순아! 세상은 지금 옛일은 맨홀뚜껑처럼

덮어버리고

화개장터는 유유한 거래에 흥얼거리고 있단다.



                                  * 사진 : 2010년 지리산 종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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