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산림문학' 초대시 - 김두환

김창집 2020. 9. 28. 16:43

 

, 멀리서 보면

깊은 수묵화요

 

, 가까이서 살피면

새 짐승들의 보금자리요

 

, 들앉아 읽으면

옛 고향 큰 글방 달거리요

 

, 곰곰 들으면

설법 강론이요

 

, 팔 베고 누워서

살살 긁어대면

가야금 산조로 높아지니

 

세상의 한탄이나 슬픔이나

개염부릴 일 다 잊고

되레 느긋이 자적하면서

아심여칭할 데가 바로 여기인 것을

뉘 감히 훼방 놓을 것인가.

 

찬가

 

아 산아

푸른 산아

엎드리면 울렁거리고

안기면 복받치는 것을

 

아 산아

붉은 산아

들면 뜨거워지고

헤집으면 활활 타는 것을

 

아 산아

하얀 산아

 

빠지면 깊어지고

묻히면 영원한 꿈인 것을

 

산아 산아

미더운 산아, 끝내는

너로 말미암아

깨닫고

너로 말미암아

일어서고 너로 말미암아

쌓아올리거늘

 

어찌 좇아

그 화엄華嚴 살지 않을 것인가.

 

을 살고 싶다

 

바닷가 거닐면 바다 환상에

산에 들면 산정山情에 젖는

인생 곡절

굽이굽이 돌아 높고 멀다.

떠꺼머리 힘 좋은 한창 때

꿈같이 높은 산

마냥 키우며 그 꽃향기 좇아 백리

봄철 산등성이 길 팍팍해도

여름내 만평 녹음 속

개살구 꿈 토실토실 살붙고,

벌떼 제맛나는 단감을 잉잉 보채듯

중년의 집념은 서둘러

가을 단풍빛 부시도록 은은하리라만

오히려 겨울 눈산에

은빛 아릿한 눈꽃같은

노년 기품, 그것 진정 고고히

만월滿月 두둥실 뜰까부다.

사철을 품은 산

그것이 펼치는 흐름 속

한평생 꿋꿋이, 안 넘어졌고

빛바랜 사연

그 몸빛 내내 창창함이여.

그렇듯 임도 사랑도

산에 나서 산을 살면

백년 천년 무성한 숲이려니,

아으,

아름찬 나무들 들어선 산이고 싶다.

 

가을 편지

 

어느새

소슬바람 누렇다

잎사귀 오그라든

박덩쿨 심장에

귀 기울이니

힘없는 박동

으시시 떨린다

 

속절없이 피고 지던

긴긴 세월

뒤안길서 울며 태우다

뒤웅박

몇 초롱을 빌었던가

 

노을 핀

손바닥만큼 남은

내 하늘 언저리에

잔정을 식힐

그 일만 남았는가

 

아아, 이젠

뻐꾸기 날아와 쪼고 쪼아

그 배설물에

봄 산피듯이

환생還生

거듭 빌 뿐이다.

 

깨달음 1

 

나이 육십, 기울어진

체력 탓일까 오르다 넘어졌는데

마침 나뭇가지에 받쳐

가까스로 낙상은 안 했지만

바싹 오그라들었다

 

산다는 것이

사람만 더불은 게 아니고

해와 달 나무 물 등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분명한데

그걸 이 나이에야 깨달았음에

여간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 나도 더 늦기 전에

누굴 떠받쳐 줄, 밀어 줄

한 몫, 지겟작대기 해내야 한다면

시 한 편 써낼 끈질긴

그 노력도 좋으리라.

 

 

                                          * 산림문학2020년 가을(통권39)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