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산림문학' 녹색문학상 수상작가 시

김창집 2020. 10. 3. 12:00

낙산사 의상대 노송 일출 - 박희진

 

의상대 앞바다, 망망대해에

자욱했던 어둠을 노송은 빨아들여,

혼신의 힘을 다해 밤새도록

시나브로 빨아들여

마침내 노송이 칠흑의 묵송 되자

수평선 뚫고 해가 솟아올라

바다 위에 황금의 기왓장 까누나

해 바다 소나무가

제각기 극명한 제 모습 지니면서

간격이 없는, 완벽하게 하나를 이룬

이 찰라 속 영원의 조화 보라

이 아름다운 극치의 황홀 보라

                         *2012년 수상자

 

숲의 소리를 들었는가 - 조병무

 

아무도 모른다

숲의 소리를

 

이웃하는 새들이 찾아와

들려주는 새벽 무한의 소리를

누군가 엿듣다 달아나는

시늉 속에 숲은 마음을 연다

 

늘어진 나뭇가지 붙들고

세상 찾아 헤매는

청설모 다람쥐 오고 갈 때

들었는가 또 한 소리를

숲은 흔들리며 마음을 숨긴다

 

어느 결

나뭇잎 사이사이 스며드는

조각난 햇빛 모서리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바람의 흔적으로

숲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다

 

사람들아

숲과 살아가는 그 많은 생명과 환희

그들 삶의 소리는 소리일 뿐

 

숲의 형상에 숨겨놓은

영령들의 미소 따라

조용한 울림으로 오는

잔영의 의미를

 

아무도 모른다

숲의 소리인지를

               *2014년 수상자

 

비밀의 숲 - 김후란

       -자연 속으로1

 

나는

파도의 옷자락을 끌고

이 숲으로 왔다

변화를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었다

바위조차 숨죽이고 기다렸다

 

푸른 잎새들 이마에

천국의 새 모여들고

들꽃을 피우려

비를 기다리던 산자락에

바다가 입을 맞춘다

 

겹겹 옷 입은 산 황홀하여라

비밀의 숲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어린 나무들과

키 큰 나무들의 숨소리에

저 소리꾼의 진양조 가락이 울린다

 

눈부셔라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면서

아침햇살에 비를 번득이는 바다처럼

신은 살아 있다 청렬하고 푸근하다

이 만든 숲이다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영혼의 긴 그림자를 끌고

천천히 걸어간다

                        *2015년 수상자

 

나무 - 임보

     산상문답3

 

[물음]

 

스승님,

눈도 코도 없이

한평생 한 곳에 붙박여 사는

저 나무들은 얼마나 어둡고 답답할는지요?

 

[대답]

 

네 눈이 천 리를 보고

네 귀가 백 리를 듣는다고 치자

그러나 저 허허한 우주의 다락에서 내려다보면

네가 거느린 세상도 좁고 좁다

네가 한 마리 개미의 더듬이를 우습게 보듯이

만 리의 더듬이를 가진 자가 너를 본다면

네 눈과 귀 또한 얼마나 가소롭겠느냐?

그러나 생명의 의미는

더듬이의 길이로 측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눈을 지닌 자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귀를 가진 자는 들리는 것에 마음을 기울인다

만 리를 보는 자는 만 리의 근심을 안게 되고

천 리를 듣는 자는 천 리의 걱정을 지게 된다

보도 듣도 못한 한 그루 측백나무가

천 년을 사는 것을 너는 아직 못 보았느냐?

그들에겐 근심이 적다

어둡고 답답하리라 염려하지 말라

움직이지 않으니 더듬이가 무슨 소용일까

그러나 그들도 필요한 건 몸으로 다 안다

우리는 눈 귀 닫으면 온 세상이 어둡지만

그들의 몸은 늘 열려 있어서

어둠의 밤이나 폭풍의 낮이나

언제나 한결같이 밝다

무엇으로 그것을 아느냐고?

보라, 햇빛을 만나면 잎을 열고

봄이 오면 꽃을 피우지 않더냐

그들이 왜 답답하단 말이냐.

                              *2017년 수상자

 

                   *산림문학 2020년 가을호(통권3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