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권도중 시집 '그대 거리가 색으로 살아있다'

김창집 2020. 11. 25. 18:14

나비의 몸짓

 

아직 오지 않았고 이전의 고독마저

순간과 수도 없이 겹쳐지고 있었다

나비가 필요한 꽃이 그 경계에 피었다

 

안 보이는 슬픔의 빛깔이 접었다 펴는, 스러지기 위해 맺히는 이슬의 짧은, 나비의 몸짓 기다린 꽃이 가진 많은 첫,

 

첫 볼이 붉어질 첫정이 간절해질, 새벽의 집중을 몸이 먼저 알아갈 때, 몰입이 첫 arrive의 순간 아득한 절벽,

 

젖은 날개의 빛이 어둠을 벗길 때

싹은 벌써 파릇하다 젖을 수 있다면 흠뻑

봄비가 가지와 풀 섶에 나비를 깨웠던 것이다

 

물빛 그림자

 

너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너의 위안이

된다 네 상처 내 걱정에 네 모르게 고여지는

 

눈물엔

네 죄가 씻기고

있는 물빛 그림자

 

*

 

힘든 친구가 왔구나 다독여 보내도록

네 곁을 간 눈물은 네가 모르는 천지의

 

목련도

위안이 되겠지

바보 같다 하여도

 

*

 

어떤 죄가 씻고 있는 네 눈물에 씻겨 지는

풀잎 씻은 이슬방울 순해져 있는 것이

 

베란다

화분 곁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바람골

 

자식과 부모 사이 바람골이 있었다

시어머니 남편 사이 바람골이 있었다

설움도 바람 가짓껏*

골 따라서 흘렀다

 

어느 날 바람 불어 퍼질러 양말 벗고

얘기해봐 불만 있음 말대꾸 하지 말고

콧구멍 없는 보따리

지 새끼들 바쁘네

 

골 없는 아파트가 외 앉은 감옥인지

숫자로 문을 열고 들와서 쇠문 잠근

말 잃은 바람골에는

억새꽃만 환하다

 

---

*바람 가짓껏 : 안동 지방어. 가지껏, (바람)가득히, (바람의) 한도껏, 넘치지 않을 한도로, 한계 선상으로, 많이, 힘껏, 끝까지. (가지+.)

 

이 언덕 저 언덕

 

1

 

   --산과 산 사이 골이 있어 어긋남이 흘러간다 골이 얕으면 듣고 싶은 말만 해줘야 돼 아니면 말을 말고 내 생각을 맞춰야 돼 잘 해줘도 그건 내 생각으로 잘 해준 거야 저쪽 언덕은 이쪽 언덕이 아니야 내 말 상대방이 못 알아듣고 지 생각 다르다꼬 틀리는 말로 설득하려 한다 개울도 얕으면 지 생각뿐이잖아--

 

  저 언덕은 저렇구나 이 언덕은 이런데

  틀리는 다른 생각이 제 골마다 흐른다

 

2

 

  저 언덕이 이 언덕으로 바람 보내면

  이 언덕은 저 언덕으로 달빛 보낸다

  한 생각 산정을 넘는 사잇길을 품고서

 

탱자나무 꽃

 

찔리면 무지 아린 울타리가 있었다

나쁜 기운을 막는 약 같은 문장으로

탱자도 꽃을 피운다 탱자 탱자 하지 마라

 

편지를 띄우면 가게 될 그곳으로

없어서 자라나던 순한 피 묻어 있다

네게도 디아스포라 가시가 있지 않는가

 

밖으로 살던 울타리를 건너는 봄날

피난 철길 건넌 오방의 하늘 간절한

지존인 탱자나무 가시 하얀 꽃을 보았다

 

그대 거리가 색으로 살아있다

 

  그대 거리가 색으로 살아 있다

  알고도 알 수 없는 살아있는 사랑에게

  유한이 무한을 갈 때 그 거리로 있는 색

 

  그 집에 들가면은 내 마음 앤이 되고 사람을 취하고픈 그 거리가 사랑인 속사정 못 건넌 거리 축지법도 써본다

 

  금지된 선은 변하지 않는 거리가 아니지 거리를 없애러 가는 아름다움의 비례지 없어도 앤의 옆구리 손을 자꾸 넣는다

 

  고픔이 보존되는 힘에게 부재에게 유한에서 생긴 힘이 가고 있다, 스텔라! 욕망은 외로운 목숨, 초월하는 색일까

 

  갈 수 없어 갖게 되는 깊어진 유한에게

  푸름이나 코발트보다 너머로 열려 있는?

  사람아, 닿지 못하는 그리움의 색인가

 

 

-시집그대 거리가 색으로 살아있다2020. 책만드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