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에 사는 것은
섬에 사는 것은
바다를 보는 것이다
바다를 보는 것은
외로움에 갇힌 것이다
외로움
그리움 되면
문득 섬이 되는 것이다
외롭다와 그립다를
꼭 나누고 싶다면
내가 섬인지
섬이 나인지
나누어 봐야 한다
나누지
못하는 날은
이미 하나인 것이다
♧ 섬사람 섬에 살아도
산을 향해 앉으면 발아래 파도소리
바다를 향해 서면 쌓이는 산새소리
섬사람
섬에 살아도
섬 하나 묻고 삽니다
삼십 년 기다리다 섬이 되어 앉은 사람
원혼굿 파도에 씻겨 동백으로 지는 갯가
섬사람
바다 한복판
등불 들고 삽니다
♧ 섬 그리기
오늘도 섬 그리기
바다부터 그립니다
분명 섬을 그렸는데
어머니 얼굴입니다
파도는
어머니 주름살
펴질 날이 없습니다
분명 바다를 그렸는데
어머니 가슴입니다
무자년 울음 자국이
멍울 되어 섬입니다
섬사람
섬 그리기는
온통 퍼런색입니다
♧ 파도
부서질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섬
파도됩니다
바다, 그 아무리 넓어도
발끝까지 어루만져
그리움
보석처럼 빛나
별로 뜨는
섬 하나
섬 둘
♧ 무인도
산이 절로 높아야 물이 멀리 흐르듯
침묵이 오랠수록
자비는 깊어지는가
파도에 제살을 깎아
좌선하는 수도승
사람이 모여 살까 샘물 하나 없이 하고
인간의 언어 따윈
아예 모른 바닷새들
무언의
긴 설법으로
날게 하고 잠들게 하고
언어가 없는 곳에 그리움이 어찌 있으랴
바위틈 갯메꽃은
보는 이 없이 피었다 지고
고독은
타고난 죄업
인간만의 굴레인 걸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는 나는 또한 무엇인가
마음만 같지 않아
들꽃 하나 피우지 못한
둥둥 떠
뿌리조차 없이
흘러가는 섬이네
* 고성기 시집『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파우스트, 20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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