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고성기 섬 시조 모음

김창집 2020. 12. 2. 02:02

섬에 사는 것은

 

섬에 사는 것은

바다를 보는 것이다

바다를 보는 것은

외로움에 갇힌 것이다

외로움

그리움 되면

문득 섬이 되는 것이다

 

외롭다와 그립다를

꼭 나누고 싶다면

내가 섬인지

섬이 나인지

나누어 봐야 한다

나누지

못하는 날은

이미 하나인 것이다

 

섬사람 섬에 살아도

 

산을 향해 앉으면 발아래 파도소리

바다를 향해 서면 쌓이는 산새소리

섬사람

섬에 살아도

섬 하나 묻고 삽니다

 

삼십 년 기다리다 섬이 되어 앉은 사람

원혼굿 파도에 씻겨 동백으로 지는 갯가

섬사람

바다 한복판

등불 들고 삽니다

 

섬 그리기

 

오늘도 섬 그리기

바다부터 그립니다

분명 섬을 그렸는데

어머니 얼굴입니다

파도는

어머니 주름살

펴질 날이 없습니다

 

분명 바다를 그렸는데

어머니 가슴입니다

무자년 울음 자국이

멍울 되어 섬입니다

섬사람

섬 그리기는

온통 퍼런색입니다

 

파도

 

부서질 줄 아는 사람

외로운 섬

파도됩니다

바다, 그 아무리 넓어도

발끝까지 어루만져

그리움

보석처럼 빛나

별로 뜨는

섬 하나

섬 둘

 

무인도

 

산이 절로 높아야 물이 멀리 흐르듯

침묵이 오랠수록

자비는 깊어지는가

파도에 제살을 깎아

좌선하는 수도승

 

사람이 모여 살까 샘물 하나 없이 하고

인간의 언어 따윈

아예 모른 바닷새들

무언의

긴 설법으로

날게 하고 잠들게 하고

 

언어가 없는 곳에 그리움이 어찌 있으랴

바위틈 갯메꽃은

보는 이 없이 피었다 지고

고독은

타고난 죄업

인간만의 굴레인 걸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는 나는 또한 무엇인가

마음만 같지 않아

들꽃 하나 피우지 못한

둥둥 떠

뿌리조차 없이

흘러가는 섬이네

 

 

                             * 고성기 시집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파우스트,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