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무자 시 '비틀거리는 언어' 외 5편과 명자꽃

김창집 2021. 3. 8. 12:50

비틀거리는 언어

 

생각의 숲을 오르내리는 들숨날숨

 

등에 진 배낭에 꾹꾹 눌러 담아온 이야기들

 

풀숲 그늘에 앉아 살며시 풀어놓으면

 

간간이 부는 계곡 바람에 들꽃들 살가운 손짓 따라

 

풀 이끼 사이로 흐르는 잔물결 돌 틈을 맴돌다

 

어느 구비에 쉬어가야 할지

 

순간을 놓쳐버리고

 

아득히 먼 곳으로

 

비틀거리며 흩어져버리는 언어들

 

그대가 흐르는 강

 

지는 해 아쉬운 듯

붉은 노을에 그을린

애절하고 서글픈 봄날의 울부짖음

마른 바람도 빈 나뭇가지 흔들며 울고 있는 어스름

꽃봉오리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저승길 서둘렀던 한() 비워내고

곱게 단장한 꽃무덤

서글픈 고통의 몸부림은

흘러가라 흘러가라고 기원했건만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는

여인의 가슴에 시련으로 멈추고

또 다른 아픔을 잉태한 피눈물은

옹이진 가슴에 붉게 뭉쳐

파리한 심장을 때린다

 

디카 속

 

숨 멈추고 찰칵.”

떨리는 가슴은 얼어붙어

안개비 실바람, 살가운 마중에

흔들림 속 빛의 그네를 타면

렌즈 속으로 함초롬히 내려앉은

이슬의 꽃무더기

안개바람 쓰다듬어 설레는 마음

살며시 고개 숙여

바람의 속삭임에

들꽃이 이야기 속으로

오솔길 따라 소리 없는

마음 달려 머무는 봄의 숲

 

 

바람의 속삭임에 이끌려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도심의 소음을 삼키는 사봉낙조(紗峰落照)

 

붉은 빛 잔잔한 일렁임 속으로

사라져 가는 흔적들

어깨를 짓누르는 내 짐들도 함께 풀어 놓는다

 

잠시 활활 타오르다가

이윽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번뇌들

까만 어둠이 살포시 어깨를 감싸 안는다

 

해녀콩

 

검게 그을린 얼굴에 더해진 골 깊은 주름살

 

살아온 날들 위로 설움 뒤섞여

 

신음소리도 내지르지 못해 안으로 삭히다

 

핵라 담아 내뱉는 숨비소리

 

비명소리조차 허용되지 않아 삼킨 울음

 

심장가지 갈기갈기 찢어져 토해낸

 

붉은 피

 

지신밟기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 위엔 홍동백서

눈보라에 젖었다 말랐다 북어허리에

긴 실타래로 무병장수 엮어 시루떡 위에 올려놓고

죽어서도 웃고 있는 돼지머리 정 중앙에 자리하니

신사임당* 다소곳이 들어와 합장하고

세종대왕* 들어와서 궂은 액 멀리멀리 귀양 보내고

만복을 복조리에 담아

꽹과리, , 장구, 북에 가득가득 실어주신다

꽹과리야 번개같이

징아 태풍이 휘몰아치듯

장구야 쏟아지는 빗줄기같이

북아 둥실둥실 구름처럼

만복을 실어 백성에게 전하여라

한 다리 땅을 짚고 또 한 다리 하늘 향해

열 두발 긴 상모 온 우주 휘감아 춤을 춘다

상쇠가 꽹과리 치며 길을 나선다

징이 바람을 잡고

장구와 북이 하늘을 잡아

나풀나풀 지신을 밟는다

덩실덩실 춤사위 따라 집집마다

만복이 들어간다

만복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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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오만 원 권 지폐.

*세종대왕 만 원 권 지폐.

 

 

                               *이무자 시집 비틀거리는 언어(다층, 20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