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 대관 일정 관계로
좀 일찍 날짜를 잡았다는 시화전,
첫날 문을 닫고 나면
수고한 분들 모시고
막걸리 한 잔 해볼까 하고 나선 길.
뭔가 눈에 번쩍 띄어
바라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일찍 꽃을 피웠다.
꽃은 그리 크지 앉지만
나란히 선 네 그루 올벚나무
시기를 앞당겨 먼저 피었다.
*시화전은 3월 6일(토)부터
3월 11일(목)까지
문예회관 제2전시실에서 열리는데,
코로나19 때문에 5시경에 일찍 문을 닫는다.
♧ 명함 - 강상돈
널브러진 낙엽 몇 장
묵직이 밟고 서서
눌림과 구겨짐이
흑점으로 태어난
내 이력
점자로 찍어
방점 하나 남긴다
♧ 해녀의 눈 - 김영란
해녀의 물안경을
눈이라고 합니다
통눈은 왕눈이, 두 눈짜리 족쇄눈, 쑥 한 줌 비벼 닦으면 바닷길이 환해지죠 물 한 모금 허락 않는 열 길 물속에서 칠성판 등에 지고 목숨값 얻으러 갈 때마다 눈멀어 귀멀어 세상에서 멀어져도
눈 쓰고 퍼렇게 눈 뜨고
눈을 건져 올리죠
♧ 수국 - 김옥순
인생여정처럼
대처의 한 수
나툼*으로 다양하게 그려간다.
카멜레온처럼
화려한 가화의 분장은
예쁘게 더 예쁘게
숲의 요정으로 산다.
삶의 경쟁은 숲에도 바쁘다.
---
*나툼 : 명백히 모습이 드러나거나 드러냄.
♧ 그리움 - 김종호
그리움 따라 걷다가
장미화원이 눈이 멈췄다.
아, 그 색과 향기
숨이 막힐 듯
가슴은 퉁퉁거리고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
77세의 그리움은
끝내 만날 수 없었네.
먼먼 날에
불쑥 내밀고 간
장미 한 송이
세상에
단 한 송이.
♧ 늦눈마저 보내고 - 문순자
목질이 단단할수록 옹이가 깊이 박힌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그것이 눈이라는 걸
몸으로,
몸으로 말하는
갱년기 잣밤나무
♧ 봄밤의 명상 - 김창화
가로수 잎 사이로 다정히 흐르는 밤
네온 등 휘황한 이 거리로 수많은 봄이
가고 오는 동안
어쩌면 나는 삶의 빛을 찾아 하염없이
퍼덕거렸던 불나비와도 닮은 삶이랄까
좋아할 일 좋아했고
슬퍼할 일 슬퍼했고
분노할 일 분노했던
인생무대에서 마지막 삶을 장식할
마무리 연기를 준비하는 배우처럼
아련한 그간의 시간들과
이제 몇%쯤 남은
생애를 가늠해 보는 밤
굳이 지탱해야할 것도 없는 지금
내 그림자는 네온 빛에 아롱지며
끝내 완성되지 못한 그림처럼
다정한 훈풍에 가없이 흔들리고 있다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섬 시집 '혼디 지킬락' 발간 (0) | 2021.03.09 |
---|---|
이무자 시 '비틀거리는 언어' 외 5편과 명자꽃 (0) | 2021.03.08 |
최기종 시 '불청객' 외 4편과 살갈퀴꽃 (0) | 2021.03.02 |
김수열 시 '오리' 외 4편 (0) | 2021.02.28 |
윤병주 시집 '풋사과를 먹는 저녁' 발간 (0) | 202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