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청객
아마 환절기였을 거다. 그가 내 집에 불쑥 들어왔다. 청하지 안 했는데도 흙발로 들어와서는 시비를 걸었다. 얼굴을 붉히며 나가라고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다. 부적을 붙이고 쥐약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먼저 눈을 부라리며 발정을 해대니 몰아낼 방법이 없다. 집에 들면 개도 쫓지 않는다고 했지. 안방 내어주고 자부동도 깔아주고 뜨끈한 국밥을 말아 주었다. 한숨 주무시고 가라고 축음기도 틀어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간다.
♧ 가거도 바다
가거도 옥색바다
둥구 씨와 땜마를 타고
남문, 용머리, 고래 물 품는 디 지나서
장가살밑, 망향바위, 오리 똥 싼 데 지나서
하늘개, 빈주암, 앵화구곡, 큰덕, 작은덕 지나서
일번 검둥여, 이번 검둥여, 납덕여, 오동여 지나서
저기 거룻배 다가오니
둥구씨, 치다 보고는
“어이! 재미 좀 봤는감?”
“재미는 무슨, 일도 없네.”
“엄살은 그만 떨고 넉 개 던져 봐.”
“그려. 받아랑께.”
허면서 팔뚝만한 것들 던지는디
“하나이 둘이고 서이네 아 너이고.”
그런디 받아내던 한 마리
뱃전에 닿지 못허고 바다에 풍덩
내가 아쉬워허니
둥구 씨 허는 말이
“아, 여그가 우리집 수족관이였부러.”
♧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거친 바닥 넘고 넘어
불볼락, 깔데기 뛰어노는
그 섬에 가서
한 삼 년 푹 쉬고 싶다
먹빛 해무에 감싸인
그 섬에 가서
바다 속 깊이 뿌리 내리고
하얗게 부서지면서
한 삼 년 푹 묵히고 싶다
해뜰목, 달뜬목, 동개, 빈주암, 오리똥산데, 석순이빠진여, 섬등반도, 국흘도
바람에 흔들리고 환호하면서
후박나무 되어서
몽돌이 되고 짝지 되어서
한 삼 년 벌겋게 익어가고 싶다
거친 바닥을 넘어서
눈물, 콧물, 똥물까지 토해내고
결국 빈속으로, 빈주먹으로
그 섬에 가서 반디처럼
작은 등불 하나 밝히고 싶다
♧ 아버지 집
그 날,
아버지 집에 갔을 때
눈이 내리고
새 한 마리
감 가지에서 울고 있었다
아버지 방은 온기 하나 없었다
지름 닳아진다고
전기장판으로 시한을 나시는
아버지, 구식 라디오 틀어놓고는
찬눈을 펑펑 맞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막혔더라
-비닐하우스가 무너졌더라
아버지, 소릿기 하나 없이
눈소식 전할 때
라디오도 따라서
긴급 뉴스 타전한다
그날,
아버지 집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고
라디오 한 대 침상 머리에서
아버지와 벗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
소릿기 하나 없이 울어서
감 가지만 아프게 했다
♧ 아버지 등
목욕탕에서
아버지 등 밀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등도
주름살 늘어나듯이
비바람 피하지 못하는지
어릴 때
아버지의 너른 등
따개비처럼 붙어서 한참을 밀어도
사래긴 밭처럼 당당 멀었었다.
이제는 손이 커져서
여름소나기 지나가듯이 등 밀어대니
등도 낯가리면서 작아지는 것인지
아버지 굽은 등
결기도 자존도 빠져나가고
등도 서리 맞으면 가벼워지는지
황사에 깎이고 패여서
종잘거리던 시내도 말라버렸으니
등도 망일이면 고독한 문양이 되는 것인지
*최기종 시집 『목포, 에말이요』(푸른사상, 20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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