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수열 산문집 '달보다 먼 곳' 발간

김창집 2021. 3. 24. 15:24

 

* 어머니 이야기

 

  나는 내 언어를 교과서에서 배웠다. 모르는 언어가 눈에 띄면 표준이 되는 언어만 실려 있는 국어사전에 기댔다.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의 언어를 삶에서 체득했다. 바닷물에 절고 바람에 씻겨 오로지 알갱이만 남은 언어로 어머니는 울고 웃고 사랑하고 또 싸웠다. 한때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싫었고 미웠다. 부끄러웠다. 문학에 뜻을 두고 제주의 속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어머니의 언어가 귀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 언어의 소중함을 알았다. 더불어 내가 배운 언어에는 감정도 느낌도 진정한 분노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언어로는 어머니가 온몸으로 살아온 삶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새벽별을 보며 밭에 나갔다가 허리 한번 펼 틈도 없이 다시 바당밭으로 나가야 하는 고단한 삶을, 교과서에서 배운 언어로는, 더군다나 표준만을 강요하는 국어사전에 실린 언어로는 도무지 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릴 수도 담아낼 수도 없었다. 삶을 낳고 기르다가 결국은 빼앗기고 능욕당하고 스러져간 술픔은 물론이거니와 콩 반쪽도 나누는 넉넉한 삶의 소용돌이를 당차게 되갈라치는 당당함을 어머니의 언어가 아니면 담아낼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언어는 늘 피해자의 언어였다. 피해자의 언어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한숨과 눈물이 섞여 있다.

 

  '양지공원에도 못 가보고 집이서 귀양풀이 헌 덴 허영게 그딘 가봐사 헐 거 아닌가? 기여게 맞다게 얼굴보민 속만 상허고 고를 말도 없고 심방어른이 가시어멍 거느리걸랑 잊어불지 말았당 인정으로 오천 원만 걸어도라 미우나 고우나 단사윈디 저싱질 노잣돈이라도 보태사주 경허고 영개 울리걸랑 촘젠 말앙 막 울어불렌 허라 속 시원이 울렌허라 쉐 울듯 울어사 시원해진다 민호어멍 정신 섞어졍 제대로 울지도 못 해실거여 막 울렌허라 울어부러사 애산 가슴 풀린다 울어부러사 살아진다 사는 게 우는 거난 그자 막 울렌허라 알아시냐?'        - 졸시, 어머니의 전화전문

 

*전체 글 : ‘섬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중 '어머니 이야기'

 

주 목차

 

*1

내 문학은 거기서 시작되었다12 / 내가 두고 온 그때18

어느 할머니의 거룩한 생애23 / 돌아갈 수 없어서 그리운 것들29

멀리 있는 건 언제나 그립다35 / 내 숨결이 바람이며 내 몸이 곧 섬이다44

언어와 역사로 읽는 제주의 삶, 제주의 문학52

 

*2

바다에 스민 기억들60 / 추억 속의 무근성을 만나다71

무언가 아슴하게 보이는 날들을 위하여85

섬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일95 / 심방 정공철을 말하다108

제주 마당극의 회고와 전망을 대신하여119 / 더불어 곶자왈과 함께 사는 법132

존재인식의 경계에서148 /이내 먹먹해져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158

제주를 닮은 섬, 모리셔스를 가다171 / 한반도의 대척점, 콜롬비아를 보다183

탐라 기행을 기행하다195 / 바다에서 길을 잃다210

양제해를 다시 생각한다226

 

*3

문학으로 재기억되는 젊은 4·3242 / 4·3이 평화라면 강정은 희망입니다264

시를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어느 시인을 생각한다285

 

*4

4·3의 아픔, 시어와 시어로 잇다310 / 제주작가회의 20년을 회고하며320

 

 

                                         *김수열 산문집 달보다 먼 곳(삶창, 20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