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라산 문학 제33집 '시, 영혼을 마스크하다' 발간

김창집 2021. 3. 27. 14:31

휘파람새 지상호

 

오래 전

신임으로 입사했을 때

원로교사인 한문 선생님

 

지금은 세상 떠나고

계시지 않은

막걸리를 좋아하고

말이 참 무거워

백발이 성성한 당숙 같은

 

몇 분 모인 조촐한 자리에서

어렵게 던진 한 마디 말

 

세상살이 조금 손해 본 듯허영 살면 편허메

 

휘파람새 소리처럼

간간히 돋아나는

 

그 말

 

벽에 기대어 김정희

 

비탈길 헐린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보릿고개 부은 항아리

찾아오는 사람 없다

매일 들러주는 보호사가 사오는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을 먹는 할아버지

할머니 먼저 간 후 항아리 열어보지도 않고

어루만져 볼 기력도 없는 기왓장만 들썩인다

덧댄 울타리가 달랑거리며 인사해줄 뿐

큰바람 오면 자리도 허술한 항아리

삭아져 내리는 뼈처럼 차갑다

낙엽만 굴러 와서 주인 허락도 없이 마당에 쌓이고

빗자루 들고 나오는 기척도 없이

겨울 해만 벽에 기댄 방에 마지막 겨울 온기를 때고 있다

 

바람꽃 지다 이윤승

 

햇살에 스친 상처 안고 가을 앞에 선

고개 떨군 시든 바람꽃잎

한 잎마저 왜바람에 흔들린다

풀숲 계곡 숨바꼭질하며

바위틈 너머 뿜어오는 향기

유년의 놀이터에 머물러 노는데

황혼빛 노을에 물들어

숨어 우는 저녁 해 사이사이로

가을을 품고 익어가는 바람꽃 지려나

이제 세월을 놓고 가라 아우성 치고

영그는 꽃들 들판을 탐한다

 

잠든 사이에 양순진

 

잠든 사이에

너울성 파도가 꽃 같은 중학생을 데려가고

 

잠든 사이에

위세당당 하던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 확진되고

 

잠든 사이에

북한군 총에 죽은 아버지 위해

고등학생 아들이 억울하다며

눈물에 젖은 청원서 보내고

 

잠든 사이에

발목 골절 허리 삐끗한 육신이

거짓말처럼 원상복구 되고

 

잠든 사이에

봄여름 싹둑 자르고 그 틈새로

도둑처럼 가을이 침입하고

 

제비꽃 양대영

 

도서관 정문 위

제비집

 

새끼 여섯 마리

 

어미가 날아들면

여섯 송이

목구멍

 

,

노란 꽃 핀다

 

고사리 문용진

 

모습 그대로

누굴 위한 기도일까

 

바람이 불고 비가 오던 날

속 깊이 망설이다

 

바스락

나투셨네

 

반딧불이 향연 김항신

 

별이 쏟아지는 인도네시아 클리아스 강가

록 카위 공원에 배를 띄운다

죽죽 오름 아리아의 세레나데처럼

샹들리에 불빛 실어내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한라산 문학 제33, 영혼을 마스크하다(2020)에서

                               *사진 : 현호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