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1 하반기 제17호의 시(2)

김창집 2021. 12. 10. 00:20

 

생각 곽은진

 

생각을 아니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건

잊으려는 그 얼굴이네

 

바쁜 일상에도

문득문득 젖어드는

그리움은 고요한 마음에

돌을 던지네

 

잊자 생각하면

더욱 생각나니

생각마저 버려야 하네

 

 

한라산 진달래밭에서 - 김용길

 

 (1) 길을 잃다

 

산머리 앞 진달래밭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렸네

시벌건 멍석 펼쳐놓은 듯

만개한 꽃밭

봄볕 깔린 길

건너다 넘어졌지

 

바짓가랑이마다 꽃잎 방울 피어나고

꽃물 젖은 신발 털다 말고

우러러보던 천공天空

 

산이 내려서고

찢어진 구름 몇 송이

삿갓 쓴 채 달아나고.

 

 (2) 이정표

 

꽃향에 취해 서성거렸네

길은 사라지고

오던 발걸음 되걸어도

볕살 자국만 남고

 

절뚝거리며 꽃밭 주변을

맴돌았네

이정표 하나 찾기 위해

손바닥 펴고 침방울 튕기며

다시 돌아와 앉은 자리

 

, 거기가 바로

이정표 자리였네.

 

 

중도 2 오영호

 

  큰 스님,

  크고 작음에 기준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여기 세 개의 컵을 보아라 크기가 다 같은가? 다 다릅니다. 중간 컵을 들고 옆에 작은 컵보다 큰가 작은가? 큽니다. 이 큰 컵보다는? 작습니다. 생각해 보거라 제일 작은 컵보다는 두 개가 크고, 제일 큰 컵보다는 두 개가 작지 않느냐? . 그렇습니다.

 

  그러니

  분별할 수 없지

  크다 작다 하지 마라.

 

 

바이러스가 사람을 적중했다 - 윤봉택

 

대설 지나 사흘에도 하늘이 어둡다.

코로나19세계는 잠이 들고

확진자들은 국경선을 지나

유도등 없는 활주로에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다.

날 선 가지마다 내리는 저녁 빛

대동맥을 지나온 혈류가

삼경을 넘어 모세혈관으로 모이는데,

마비된 정맥으로 길 잃은

지난 기억들이 정낭 밖에서

졸고 있다.

날이 밝으면 빛 따라 흩어질

대지의 어둠도 뒤척이는 시간

심장 박동 소리를 지키는

대숲에서

죽순 오르는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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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관리청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국내 발생 현황 202012130시 기준으로,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는 1,002명이 확인되었고, 해외 유입 사례는 28명이 확인되어 총 누적 확진자 수는 42,766(해외 유입 4,892)

 

 

봉려관 스님 - 이창선

 

해월당 안봉려관 탄신 150

신축년 일곱 돌 맞아 꽃핀 신행수기

뜨거운 불심이 살아

해월굴*을 밝힌다.

 

중생은 부처님의 가르침 깨달은 듯

미물도 귀의하면, 공덕을 쌓아 올리듯

스님도 사바세계를 품고

석상으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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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 경내에 있는 작은 굴, 봉려관 스님은 관음사 창건하기 전 이곳에서 수행정진함

 

 

관음사의 돌부처 강태훈

 

산사의 도량에 봄은 깊어

돌부처의 넉넉한 얼굴에도

미풍이 조을고

 

백목련 가지마다

꽃봉오리 벙글어졌구나

 

기도 삼매에 들었는가

늙은 보살의 등 뒤로

생로병사가

아지랑이처럼 스쳐간다

 

눈 여린 할멈이

바늘에 실 꿰듯

기도는 일념으로 간구하는 것

 

구릉마다 곱게 핀 야생화의 군락

노거수 아래에서 명상하듯

돌부처와 마주 앉아 웃고 있네

 

 

                                  * 혜향 문학회 간 혜향문학(혜향 제17, 2021)에서

                                                  * 사진 : 제주 관음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