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이애자 시집 '하늘도 모슬포에선 한눈을 팔더라'의 시(3)

김창집 2022. 3. 29. 09:27

 

붉은 송악산

 

미어진 등성이 보면 밭 하나가 참 무섭네

출입통제 금줄 치고 눕는 날 잦은 산이

억새꽃 한 판 춤사위 살이라도 푸는가

 

바다에 얼굴 묻고 파도에 소리를 묻네

간격을 포기하고 빽빽이 수직으로 맞선 날

톱날에 산 울음소리 토막토막 잘려나가네

 

휑하니 빠져버린 내 머리 같은 소나무들

송충이 잡아가며 성충으로 함께 커온

이제 막 이순을 넘긴 비탈의 붉은 생이네

 

천고의 하늘빛이 산 빛 깨우고 물빛 깨워

바람에 빗살 진 풀빛 반지르르 기름이 돌면

재선충 흉흉한 흉터 푸른 결로 감춰질까?

 

 

 

새순

 

칼바람에 지친

억새들의 몰골을 봐

 

가슴 뜯던 손

허우적허우적

하늘도 흔들더니

 

핏물 든 대궁 속에서

날을 꺼낸다.

 

 

 

 

월요일은 조크가 필요해 1

 

순번제 편찮으신 노모 수발을 드는 날

 

동생 출근하고 틈새 지킴이 삼십팔 번 채널

 

교대 조 들어서자마자 우리 가요한다

 

 

 

고등어회

 

고등어 곱게 포 떠

횡렬로 누운 활자들

 

초장 꾹 찍어 넣자 한 입에 착착 감긴다

 

단번에 습득한 언어

날로 먹었다

 

 

 

 

그믐 잘 넘기고 그림자 포개 누우니

 

문틀에 걸려 있는 속이 빈 저 쪽박

 

어느새

어느 새 한 마리

어느새 획 지나

 

 

 

 

허리가 삐끗할 때마다 앞이 캄캄해졌다

 

팔월 소나기처럼 침 꽂히고 부황 뜬 자리

 

초고속 슬라이드에 잡힌

 

내 몸은 지금

 

개기일식 중

 

 

         * 이애자 시집 하늘도 모슬포에선 한눈을 팔더라(시와 표현, 2016)에서

                                      * 사진 : 송악산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