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의 시(2)

김창집 2022. 3. 30. 07:56

 

겨울 강

 

네가 얼어붙은 것은

머무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흘러가기 싫어서도 아니다

그저, 출렁이고 흔들리는

자신이 싫어서다

때론, 소리 낮춰 울던

여울목의 쓰라림을

바닥까지 말갛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때문이다

 

강물은 혼자 있을 때만 언다

 

 

 

오래 된 말씀

 

훌쩍 커버린

아들놈 바라보는데 눈물이 납니다

 

바톤 터치 하고 떠나가신 그 분이

펄럭이던 무명 두루막 자락 누렇게 바래진

흑백 사진 속, 젊은 날의

당당하던 모습으로 서 계십니다

 

너도 자식 키워 보면 안다 하시던,

그 말씀의 뜻 이제야 알겠습니다

 

 

 

나무와 나이테

 

작은 바람 앞에서도

쉽사리 흔들리던 내가

거친 세상의 한가운데서, 이만큼

곧고 단단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안으로부터 옹골차게

겹겹이 나를 동여 묶은

그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바퀴들이라면 우리

어딘들 굴러가지 못할 곳이 있을까요

밀며 끌며 그 어딘들

가닿지 못할 곳이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다

 

한때는, 보름사리 부신 달빛

번쩍이는 물결 등에 얹고

강구*를 떠난 갈바람 새벽 물길에

해 뜨기 전, 거진 대진 화천포 거쳐

조업한계선 넘어, 눈 내리는

하늬 쪽 원산 앞 바다 자유롭게 넘나들다가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입 죽어서도 쩍 벌려

통일 기원 고사상에서 외치는 북어의

명태 동태 생태 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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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 :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의 강구항.

 

 

 

화왕산의 봄

 

1

같이 죽고 싶으면 오랍니다

온 몸에,

확 지른 진달래 화왕산이

 

2

언 땅 풀리지 않은

거친 내 마음의 비탈 위로

너 지나간 자리, 뜨거웠다

 

데인 자리 물집처럼

진달래 붉게 부풀고

몇 날 몇 밤 쓰라려 했다

 

 

 

취밭목 가는 길

 

시인이랍시고 돌부리 가시밭길

휑하니 집 나가서 떠돌다 온 놈

그래도 보기 싫다 외면 않고

묵묵히 섶을 열어 속살로 맞이하는

 

선한 아내의, 꽃무늬

푸른 저고리 옷고름 같은

 

 

                  * 권경업 시집 어른을 위한 동시 하늘로 흐르는 강(작가마을, 2008)에서

                                          * 사진 : 지리산(필터 - 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