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강
네가 얼어붙은 것은
머무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흘러가기 싫어서도 아니다
그저, 출렁이고 흔들리는
자신이 싫어서다
때론, 소리 낮춰 울던
여울목의 쓰라림을
바닥까지 말갛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때문이다
강물은 혼자 있을 때만 언다
♧ 오래 된 말씀
훌쩍 커버린
아들놈 바라보는데 눈물이 납니다
바톤 터치 하고 떠나가신 그 분이
펄럭이던 무명 두루막 자락 누렇게 바래진
흑백 사진 속, 젊은 날의
당당하던 모습으로 서 계십니다
너도 자식 키워 보면 안다 하시던,
그 말씀의 뜻 이제야 알겠습니다
♧ 나무와 나이테
작은 바람 앞에서도
쉽사리 흔들리던 내가
거친 세상의 한가운데서, 이만큼
곧고 단단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안으로부터 옹골차게
겹겹이 나를 동여 묶은
그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바퀴들이라면 우리
어딘들 굴러가지 못할 곳이 있을까요
밀며 끌며 그 어딘들
가닿지 못할 곳이 있을까요
♧ 우리는 하나다
한때는, 보름사리 부신 달빛
번쩍이는 물결 등에 얹고
강구*를 떠난 갈바람 새벽 물길에
해 뜨기 전, 거진 대진 화천포 거쳐
조업한계선 넘어, 눈 내리는
하늬 쪽 원산 앞 바다 자유롭게 넘나들다가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입 죽어서도 쩍 벌려
통일 기원 고사상에서 외치는 북어의
명태 동태 생태 황태
---
*강구 :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의 강구항.
♧ 화왕산의 봄
1
같이 죽고 싶으면 오랍니다
온 몸에, 불
확 지른 진달래 화왕산이
2
언 땅 풀리지 않은
거친 내 마음의 비탈 위로
너 지나간 자리, 뜨거웠다
데인 자리 물집처럼
진달래 붉게 부풀고
몇 날 몇 밤 쓰라려 했다
♧ 취밭목 가는 길
시인이랍시고 돌부리 가시밭길
휑하니 집 나가서 떠돌다 온 놈
그래도 보기 싫다 외면 않고
묵묵히 섶을 열어 속살로 맞이하는
선한 아내의, 꽃무늬
푸른 저고리 옷고름 같은
* 권경업 시집 – 어른을 위한 동시 『하늘로 흐르는 강』 (작가마을, 2008)에서
* 사진 : 지리산(필터 - 수채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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