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 제10집 '바람의 씨앗'의 시조(4)

김창집 2022. 7. 15. 00:15

 

워낭소리 - 박기섭

 

놋보시기 동치미에 살얼음이 깔린 아침

 

뒤울안 장독간을 눈발이 서성였다

 

이따금 흙담을 넘는 늙은 소의 워낭소리

 

                 -문학청춘2021, 여름호

 

 

 

햄릿증후군 - 김숙희

 

누가 내다 버렸을까 원목의 책꽂이를

 

재활용품 모퉁이에 소낙비 맞고 있다

 

거둘 걸, 하는 마음이 집안까지 따라왔지

 

 

살다 보면 이러한 일 어디 한둘뿐이겠나

 

지난날 아차, 하다 놓쳐버린 말 한마디

 

다음에, 다음에 하다 엇갈렸던 길도 있지

 

                  -열린시학2021, 겨울호

 

 

시 굽는 마을 - 김강호

 

반딧불이 빗금치는 강변마을 시인의 집

사무치게 서러운 소쩍새 울음 받아

시인은 시 한 덩이를 이슥토록 굽고 있다

 

설익어서 더 구우면 숯덩이가 되곤하는

드센 시와 씨름하다 지쳐버린 행간엔

상상의 완행열차가 덜컹이며 지나간다

 

깊은 잠 호리병으로 시인이 빠져들자

처마 끝 별들이 와서 시 굽는 시늉하더니

원고지 칸칸마다에 애벌레처럼 들었다

 

           -서정과 현실2021, 하반기호

 

 

 

고비, 사막 손영희

 

아버지, 간밤에 말이 죽었어요

 

그때 고삐를 놓은 건지 놓친 건지

 

쏟아진 햇살이 무거워 눈을 감았을 뿐

 

한 발 올라가면 두 발 미끄러지는

 

잿빛 모래언덕도 시간을 허물지 못해

 

이곳은 지평선이 가둔 미로의 감옥입니다

 

한세월 신기루만 쫓다가 허물어지는

 

사방이 길이며 사방이 절벽입니다

 

아버지, 간밤에 홀연히 제 말이 죽었어요

 

              -시조정신상반기호

 

 

 

한참을 울었다 - 신춘희

 

 

청탁이 오지 않아서 시집을 펴낸다

 

시들에게도 깃들어 살 집이 필요하니까

 

절망에 옹이가 박히니

 

절절함도, 깊어라

 

 

부질없다 중얼거리며 주소를 적다가

 

영혼이 너무 맑아서

 

애틋한 내 새끼들

 

가슴에 꼬옥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서정과 현실(2021, 하반기호)

 

 

                            *정드리문학 제10바람의 씨앗(황금알, 2022)에서

                                                       *사진 : 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