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거 - 洪海里
종일
밖을 내다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물끄러미 쳐다보며
못 살 줄 알았는데
못살아도 살아 있으니
잘살지는 못해도
잘 살아 있어
세상 바랄 게
뭐 있겠는가
밖을 내다볼 수 있고
세상 듣는 것만도 과분하지!
♧ 산눈시山眼詩․17 – 김영호
내 마음 고요하니
산이 잠을 자네
내 마음 산란하니
산이 비바람에 우네
내 안이 다시 편안하니
산이 길게 드러누웠네.
♧ 나눔 놀이 - 정옥임
푸시식 투닥 관솔 잉걸불에
큰 솥 가득 넘실넘실 엿물
뒤란 장독대 옆 엿 고는 날
동네 삼천 바퀴 돌고 돌아
졸음 머금은 뭉근한 단 물결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노 젓는 엄마
졸이고 졸여 존 곤 엿
나무판에 사리어 주물러
두 사람 맞잡고 보태고 늘려 파도타기
엿판 둘레 아이들 엿가락 툭 분질러
뱃심 깊은 배통바람 훅 불면
구멍 송송 현무암 엿치기 나눔 놀이
♧ 우포늪에 세 들다 - 임미리
먼 길을 돌아 우포늪에 도착했다.
왕버드나무 연둣빛 새순 사이로
찔레꽃이 만개하여 하얗게 물결칠 때
그 향기 나무의 내밀한 곳까지 스민다.
몇 십 년을 기다려 도착한 것을 아는 듯
울울창창 보이지 않는 버들잎 손을 뻗는다.
길손을 맞이하는 듯 새길을 내어준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의 틈을 비집고
찬란한 햇살이 이제 막 들어선다.
태곳적 신비한 자연의 날것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건너
자연스럽게 늪 속에 스며 있다.
늪에 걸맞은 이름 하나 얻지 못했지만
계약서 없이 세 들겠노라 물으니
우포늪은 괜찮다고 두 팔을 벌린다.
하늘은 아무도 모르게 구름을 내려보내고
나는 찔레꽃 향기처럼 스미어
지금부터 우포늪에 세 든다.
모르는 척 소요유하는 삶 찾아
태곳적 길에 첫발을 내딛는다.
♧ 빨주노초파남보 - 김혜천
빨강을 입으면 보수라 하고 주황을 입으면 중도라 한다
노랑을 입으면 소수라 하고 파랑을 입으면 진보라 한다
빨주노초파남보는 각각이 아니고
결국은 불이不二인데
가르고 찢는다
그러면 초록을 입자
따듯한 남색 패딩을 입자
모여서 피는 보라색 수국이 되자
무지개 그의 본향은 물
모두 섞여 하나가 되는 물 아닌가
*월간 『우리詩』 2022년 7월호(통권409호)의 시
*사진 : 흰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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