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달리 수국
해안길 수국에선 짠 내가 가득하다
한바탕 몰려왔다가 소금기만 남겨 놓은,
장맛비 젖은 곱슬이 연륜만큼 처졌다
평생 찔린 현무암 위에 맨발로 나 앉아서
진저리날 것 같은 바다 향해 웃는다
절망도 한 몸이 되어 삶의 무게 보태던…
열길 물속 저승길을 평생 오간 늙은 해녀
즐거움도 괴로움도 소홀한 적 한번 없듯
의연히 빗속에 앉아 보살의 미소 짓는다
♧ 쌀과 김치
올해도 고용 한파가 바닥을 친다는 뉴스
설마 내 아이가 신의 직장을 그만 둘 줄
“엄마가 그랬잖아요,
쌀과 김치면 된다.”고
엄포도 회유의 말도 안 통하는 아들 녀석
오장육부 뒤집혀도 겉으로 웃는 어미
가장이 족쇄라는 걸
내가 어찌 모를까
어느새 세상물정 아들에게 배우는 나이
쌀과 김치, 네 글자로 삶의 길을 여는 나이
엄동에 움을 키우는
나무처럼 서 있다
♧ 퍼즐 조각 맞추기
늙은 호박 진피층에
아직 남은 초록빛이,
깎이고 무너지며 걸어 온 고해의 길에
반듯이
각을 세워도
뭉근해지던 그 시간
텃밭을 배회하다가,
호박덩이에 앉았다가
치매 말기 할머니가
불쑥 맞춘 기억조각
“식겟날 호박탕시 허라, 모랑허게 먹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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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삿날 호박나물 해라, 부드럽게 먹어보자.”의 제주어
♧ 꽃파도
청상의 옥양목 치마
넌출넌출 흔들리네
이어도 이어도 사나
그 세월도 따라왔네
밀물 든
작은 가슴팍
찔레꽃 가득 피네
♧ 꽃의 임종
꽃이
지고 있다
백치처럼 순한 얼굴
향기야 있건 말건
시름에 피었다 지는
할머니 가는 길목에
따라 지는
목
백
일
홍
*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 (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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