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의 시조(6)와 수국

김창집 2022. 7. 20. 00:04

 

종달리 수국

 

해안길 수국에선 짠 내가 가득하다

한바탕 몰려왔다가 소금기만 남겨 놓은,

장맛비 젖은 곱슬이 연륜만큼 처졌다

 

평생 찔린 현무암 위에 맨발로 나 앉아서

진저리날 것 같은 바다 향해 웃는다

절망도 한 몸이 되어 삶의 무게 보태던

 

열길 물속 저승길을 평생 오간 늙은 해녀

즐거움도 괴로움도 소홀한 적 한번 없듯

의연히 빗속에 앉아 보살의 미소 짓는다

 

 

 

쌀과 김치

 

올해도 고용 한파가 바닥을 친다는 뉴스

설마 내 아이가 신의 직장을 그만 둘 줄

 

엄마가 그랬잖아요,

쌀과 김치면 된다.”

 

엄포도 회유의 말도 안 통하는 아들 녀석

오장육부 뒤집혀도 겉으로 웃는 어미

 

가장이 족쇄라는 걸

내가 어찌 모를까

 

어느새 세상물정 아들에게 배우는 나이

쌀과 김치, 네 글자로 삶의 길을 여는 나이

 

엄동에 움을 키우는

나무처럼 서 있다

 

 

 

퍼즐 조각 맞추기

 

늙은 호박 진피층에

아직 남은 초록빛이,

 

깎이고 무너지며 걸어 온 고해의 길에

 

반듯이

각을 세워도

뭉근해지던 그 시간

 

텃밭을 배회하다가,

호박덩이에 앉았다가

 

치매 말기 할머니가

불쑥 맞춘 기억조각

 

식겟날 호박탕시 허라, 모랑허게 먹어보게.”*

 

---

* “제삿날 호박나물 해라, 부드럽게 먹어보자.”의 제주어

 

 

 

꽃파도

 

청상의 옥양목 치마

넌출넌출 흔들리네

 

이어도 이어도 사나

그 세월도 따라왔네

 

밀물 든

작은 가슴팍

찔레꽃 가득 피네

 

 

 

꽃의 임종

 

꽃이

지고 있다

백치처럼 순한 얼굴

 

향기야 있건 말건

시름에 피었다 지는

 

할머니 가는 길목에

따라 지는

 

 

                           * 한희정 시집 목련꽃 편지(한그루, 2022)에서

                                                         * 사진 : 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