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달도 - 이숙경
때때로 틈이 날 때 곁이 되어 주는 섬
바람과 파랑에 밀려온 배 떠나보낸 뒤
느긋이 뒤돌아서서 달동 바다 거닌다
물때 오래 기다려 길을 여는 별섬처럼
내어 주고 바랄 것 결코 없는 외사랑
포도시* 털어놓으면 파도가 다독인다
외로운 건 섬 아닌 지독한 사람의 일
놀구름 내려앉아 함께 물드는 저물녘
노을에 타고 있는 난 맨 나중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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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시 : ‘겨우’라는 뜻으로 전라도 방언.
-『대구시조』 (2021)

♧ 만선 - 이태순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벽에 갇힌, 고독함
불평등의 뒤편에도 문틈 사이 빛이 들 때
뒤척인 잠 털어내며 청년이 가고 있다
청춘이 팔 벌리면 바다가 다 안겼다
유채꽃 만개한 봄 사랑을 생각했다
사방이 막히지 않은 성산포에 해가 뜬다
푸른 피가 들끓는 청춘이 출렁인다
만선의 꿈을 꾸며 돛단배를 풀었다
어기차 돛을 올려라 항해가 시작이다
-『서정과 현실』 (221, 하반기호)

♧ 골목 - 류미아
-몽타주
그 집이 또 나갔다
정확히는, 망해나갔다
일 년에도 몇 번을 새 간판 거는 자리
‘화로․락樂’
이름값 못하고 불씨가 또 꺼졌다
건너편 볏짚구이 그 옆 마녀닭발집
매운 눈 끔뻑이며 아직 버텨내는데
바람 찬 모퉁이 집만 불씨를 꺼뜨렸다
쓸쓸쓸,
혀를 차던 활어네는 모처럼
물 만난 고기마냥 한 상 손님을 맞고
편의점 어린 알바는 게임 삼매경이다
날은 쉬 저물고
사월도
기우는데
왠지 아직 오지 않은
새봄이 곧 온다는 듯
뽑기집 신바람 난 비트,
온 대문 두들기는데
-『정음시조』 (2021 제3호)

♧ 지평선 - 최재남
떠안은 기도 무거워 주저앉은 하늘과
오르려 발버둥 쳐도 어림없던 땅이 만나
달동네 골목에 보낼 달 한 덩이 낳는다
-『시와 소금』 (2021년 봄호)
* 정드리문학 제10집 『바람의 씨앗』 (2022)에서
* 사진 : 시원한 바다 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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