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의 시조(4)

김창집 2022. 7. 23. 00:01

*삼백초

 

보말국

 

섶섬 앞바다에 노을이,

끓고 있다

 

보목동 보말국집

한기팔 시인

단골 식당

 

냄비에 숨비소리도 함께 끓고 있었다

 

 

 

남이누나

    -김순남

 

내 딸도 남이누나!”

내 아들도 남이누나!”

 

노처녀 남이누나

오십 년 문학동인

 

어느 날 종주먹 하며

나보다 먼저 죽으면, 죽어!”

 

 

 

고향에 와 닮아간다

 

절집에서 며칠이나 병원에서 며칠이나

스님이 의사 같고 의사가 스님 같네

한 말씀 한 말씀마다 처방전도 거기서 거기

 

병원에 가는 일도 절집에 드는 일도

이삼십 년에 한번 꼴 오나마나 하지만

밤새껏 링거 물방울 목탁소리 같아라

 

봄 한철 꿩 소리가 터를 잡는 명치동산

물 실리면 단풍이요 아니면 낙엽일까

이승도 저승도 잠시 고향에 와 닮아가네

 

 

 

물매화가 돌아왔다

 

예순을 넘어서야 철드는 것 같다며

이 일 저 일 실눈 뜨고 쳐다보는 아내야

내 옷의 먼지 한 톨도 털어내는, 아내야

 

마을까지 흘러든 따라비오름 억새물결

그 물결을 거슬러 물매화가 돌아왔다

상아빛 브로치 달고 물매화가 돌아왔다

 

웅덩이가 없으면 오름이라 아니한다

이승에선 말 못할 첫사랑이 있었는지

아직도 못 눅인 능선, 물매화가 돌아왔다

 

 

 

송호리 사람들

 

모처럼

바람 불고

파도마저 드센 날

땅끝마을 송호리.

방에 갇힌 남정네들

털털털 경운기 끌고 읍내 다방 찾아간다

 

쌍화차와 양주 몇 병

양복에 백고무신

말이 외상이제

우리가 현찰 아니여!

양식장 걷어 올리믄 빚 청산도 한방이랑께

 

세상 어디에나

가야 할 길은 있다

남녘도 북녘도 내겐 살아서 가야 할 땅

올봄 또 눌러 앉아서 놓치는 길이 있다

 

 

 

겨울 억새

 

스스로 바친 거냐

아니면 털린 거냐

 

이레작 지레작 못 눕는 몸뚱이들

 

역병이 가기는 가려나

말울음 우는 들판아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사진 : 삼백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