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말국
섶섬 앞바다에 노을이,
끓고 있다
보목동 보말국집
한기팔 시인
단골 식당
냄비에 숨비소리도 함께 끓고 있었다
♧ 남이누나
-김순남
내 딸도 “남이누나!”
내 아들도 “남이누나!”
노처녀 남이누나
오십 년 문학동인
어느 날 종주먹 하며
“나보다 먼저 죽으면, 죽어!”
♧ 고향에 와 닮아간다
절집에서 며칠이나 병원에서 며칠이나
스님이 의사 같고 의사가 스님 같네
한 말씀 한 말씀마다 처방전도 거기서 거기
병원에 가는 일도 절집에 드는 일도
이삼십 년에 한번 꼴 오나마나 하지만
밤새껏 링거 물방울 목탁소리 같아라
봄 한철 꿩 소리가 터를 잡는 명치동산
물 실리면 단풍이요 아니면 낙엽일까
이승도 저승도 잠시 고향에 와 닮아가네
♧ 물매화가 돌아왔다
예순을 넘어서야 철드는 것 같다며
이 일 저 일 실눈 뜨고 쳐다보는 아내야
내 옷의 먼지 한 톨도 털어내는, 아내야
마을까지 흘러든 따라비오름 억새물결
그 물결을 거슬러 물매화가 돌아왔다
상아빛 브로치 달고 물매화가 돌아왔다
웅덩이가 없으면 오름이라 아니한다
이승에선 말 못할 첫사랑이 있었는지
아직도 못 눅인 능선, 물매화가 돌아왔다
♧ 송호리 사람들
모처럼
바람 불고
파도마저 드센 날
땅끝마을 송호리.
방에 갇힌 남정네들
털털털 경운기 끌고 읍내 다방 찾아간다
쌍화차와 양주 몇 병
양복에 백고무신
말이 외상이제
우리가 현찰 아니여!
양식장 걷어 올리믄 빚 청산도 한방이랑께
세상 어디에나
가야 할 길은 있다
남녘도 북녘도 내겐 살아서 가야 할 땅
올봄 또 눌러 앉아서 놓치는 길이 있다
♧ 겨울 억새
스스로 바친 거냐
아니면 털린 거냐
이레작 지레작 못 눕는 몸뚱이들
역병이 가기는 가려나
말울음 우는 들판아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사진 : 삼백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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