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022년 8월호의 시(3)

김창집 2022. 8. 16. 08:31

 

줄탁 - 김정원

 

하늘의 갈색 섬 매 한 마리가

내리꽂히기 직전, 강변 갈대숲에

오금이 저리는 뱁새들처럼

겨우내 땅속에 노랗게 웅크린

생명들

,

,

지구알 속에서 신호를 보낸다

 

음파 탐지기같이 하늘 어미가

그 신호의 출처를 찾아서

봄빛 부리로,

,

,

쪼아 환하게 통로를 내주자

이윽고 삐약삐약

천지에 가득한 새싹들의 가락

 

갈망은 소통을 부르고

소통은 봄날을 부화한다

 

 

 

거미줄 이비단모래

 

 

저 견고한 간극

 

어머니 길쌈하던 그 밤

고된 시집살이 씨줄로

술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날줄로

참아야 되는 인생 틀에 걸고

북 감고 바디 걸어

삶 무늬 짜듯

 

저 거미

신비롭게

줄 하나 빠지지 않고

간격마저 놓치지 않아

 

허공에 짓는 운명

직녀였는지 거미는

걸려라 사랑

움직일 수 없게 감아

바람 속에 놓아두겠네

 

다시는 놓치지 않겠네

자꾸 비껴가던 내 사랑

걸리기만 해라

곁에 두고 오래 오래 눈부시곘네

 

 

 

노부부 - 황현중

 

 

노부부가 길을 걷고 있다

서로의 손 꼭 부여잡고 껴안듯이

나란히 천천히 한 몸으로

한 몸 되는 방법 어렵고 불편했지만

둘로 사는 것 이제 불가능하다

할아버지 귀먹고

할머니 눈멀었다

할아버지의 귀는 할머니의 입으로 살았고

할머니의 눈은 할아버지의 발로 살았다

- 괜찮아?

- 괜찮아!

괜찮은 날들이었다

추워도 따뜻하지 않을 뿐이었고

어두워도 밝지 않을 뿐이었다

한 몸으로 살아서 불가능한 게 또 있다

노부부는 영원히 죽지 않는단다

서로에게 죽음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보지 못하는 눈을 두고

당신의 듣지 못하는 귀를 두고

내가 먼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밥상마다 눈먼 할머니 숟가락에

그렁그렁 버무린 할아버지 눈물 오르고

밤마다 심장병 앓는 할아버지 등에

고통을 밟는 할머니의 발 노래 얹힌다

노부부의 한 몸 안에

죽어도 죽지 않을 미륵 한 분 살고 계시다.

 

 

 

범종의 기원 - 손창기

 

 

범종에도 음향을 조절하는 혀가 있다

 

누군가 밖에서 당좌撞座를 얼얼하게 칠 때

종소리가 빠져 나가기 전

공명이 제자리를 휘돌아

속을 확- 까뒤집어 놓는 것,

소리가 금방 새어 나가지 않는 건

공기의 틈새를 여닫는 혀에 달려 있다

종의 입 속으로 손을 넣어 본다

혀가 위로 오목하게 만져진다,

혀가 짧은데 울림은 더 멀리 퍼져 나간다

 

그대 사랑한다고 마음껏 소리 지를 때

그대 사랑한다는 말 감추고 싶을 때

소리에 색깔이 묻어나고,

구슬프고 은은하게 그대의 눈에 보이려고

소리들이 몸에 새겨지는 곳

 

혀를 내밀어, 겹쳐진

두 음의 굴곡을 오래 간섭하는 일이여

 

 

 

그림자이고 싶은 이유 김미외

 

 

따뜻하다가 뜨거운 숨결 내뱉는 태양에게

꾸덕꾸떡한 심장 말리지 못하는

 

바람 같은

 

툭툭 제 울음 건드리다

누군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멈추지 못하는 걸음으로

등 떠밀리듯 사라지는

 

바람 같은

 

그대

 

잠시

그늘에 앉아

끈적한 슬픔 잘라

내게 붙여 놓고 가기를

 

 

 

                                       * 월간 우리20228월호(통권 410)에서

                                             * 사진 :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