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별들이 쪽잠을 자고 간'의 시(1)

김창집 2022. 10. 28. 01:14

 

별들이 쪽잠을 자고 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기령 풀숲에는

별들이 쪽잠을 자고 간 방이 있습니다

투명하고 둥근, 그 작은방을 내 어릴 적

한 분은 이슬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슬방이 아니면 자고 갈 수 없는, 별은

맑은 물의 산천어처럼

미리내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늦도록 반짝이는 별의 수고로움에

새벽잠 잠시 눈 붙이게 하는,

이슬방울은 4월 풀숲의 정성입니다

곰취, 쇠뜨기, 억새잎에 일찍 산책 나온

맨발의 개미는 발이 젖어도 즐겁습니다

별이 몸을 헹구고 간 이슬이기에

, 아련한 그 분의 몸 향기가

풀숲에서 번지는 까닭도

지금은 은하의 별이 되신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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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령 동해시에서 정선군 임계면 사이의 백두대간 고개

*미리내 은하수의 우리말

 

 

 

겨울 야영

 

 

등불을 꺼야겠다

 

바람이 불어서가 아니다

산중의 길 모두 지워져

기다려도 올 이 없는 이 눈밭

봄을 멀리 둔 내 마음의

흔들리지 않는 별을 보고 싶어서다

 

 

 

산새

 

 

산새에게는 잃어버릴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는 산새가

노각나무에 앉아있습니다

노각나무는 산새의 길 아래 서 있고

산새는 길 위에 앉아있습니다

길 위에 앉아있는

산새는 길이 없습니다

 

눈 내리는 산자락

땅 위의 길들 하얗게 지워져도

지워지지 않는 산새의 길

뼈 속까지 아린 추위에도 시를 읊는

가지고 있지 않기에

잃어버릴 길이 없는,

산새는 자유롭습니다

 

 

 

그대 새벽의 잔별들도

 

 

초생달, 부신 보습날로 한창

어두운 하늘 갈아엎는 이여!

녹슨 펜대를 괭이 삼아, 한자 두자

누렇게 바랜 원고지 이랑마다 뿌려놓은

어설픈 내 시의 씨앗처럼

그대 새벽의 잔별들도

차마, 전하지 못한 그 무엇의 씨앗입니까

 

지금 막

품종이 다른 씨앗 하나

은하의 저편으로 내던져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물도록 짓까불며 뛰놀던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찾지 마세요

 

플라타너스 마른 잎

구름 되어 흘러간 운동장 지나

 

어쩌면, 엄마 찾아 가을밤하늘

건너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권경업 시집 별들이 쪽잠을 자고 간(전망, 200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