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의 시(6)

김창집 2022. 11. 15. 03:02

 

 

산새에게는 잃어버릴 길이 없습니다

 

 

산새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는 산새가

노각나무에 앉아있습니다

노각나무는 산새의 길 아래 서 있고

산새는 길 위에 앉아있습니다

길 위에 앉아있는

산새는 길이 없습니다

 

눈 내리는 산자락

땅 위의 길들 하얗게 지워져도

지워지지 않는 산새의 길

뼈 속까지 아린 추위에도 시를 읊는

가지고 있지 않기에

잃어버릴 길이 없는, 산새는 자유롭습니다

 

 

 

별은 뜨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의 도시에서

별은 뜨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별들의 겨울총회가 있다

 

큰별, 작은별, 아기별,

꼬리에 꼬리를 문 꼬리별

전갈좌, 큰곰자리, M29성좌

추억으로도 목측目測되지 않던

아득한 그리움의 별까지

별의별, 별 희한한 별들이 다 모여

돌아가지 않을 것을 결의하였다

지금 지리산 장당골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몇 별마저 떠나오고

네온이 어지럽게 밤을 밝힌

그대들의 도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암담하였다

 

 

 

숫눈길의 발자국

 

 

새들도 깨어나지 않는 이른 새벽

이렇게도 긴 사연을, 또박또박

남 몰래 쓰며 숲으로 간 이여!

그대의 편지를 읽어가다 보면

산벚나무 아래 잠시 발걸음 멈춘

그대가 시인임을 알겠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눈 덮인 산비탈

맨몸, 맨발로 서서

여린 꽃잎 아롱아롱

눈물처럼 당도하고야 말 봄날

그 봄날 같은 누군가를

떨며 기다리는 내 마음도 그렇다며

 

 

 

눈 내리는 날

 

 

세상이 우울하면, 하늘은

지상의 먼 곳까지 위문편지를 보내옵니다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는, 종일

진정한 부자들이 그 소식에 즐거워하며 다가와

경배의 허릴 굽히고 총총히 물러서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위로

 

네온 등 꺼져버린 낯선 도시의 뒷골목을

비틀거리며 서성일 이들이여!

이 저녁, 실향失鄕의 싸늘한 허기에

훌훌, 더운 김 솟는

시락국 한 그릇이라도 드셨느냐며

 

 

 

거리距離

 

 

툭 투둑 툭

도토리가 떨어진다

 

흔들리며 여물어가던 그곳과

떨어져 나뒹구는 땅까지의 거리

 

돌아갈 수 없는, 시차視差

무한대다

 

 

 

                           *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작가마을,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