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3)

김창집 2022. 11. 12. 00:59

 

범섬

 

1

 

산이 섬을 낳고

섬이 산을 낳아

전설도 가라앉은

서귀포 앞바다에

은장도

퍼런 날 세워

정절을 지킨 벼랑

 

2

 

엎드린 등성이에

들꽃은 피고지고

마파람 머물다 간

일렁이는 억새숲엔

도요새

물고 온 귤향

수묵화로 번진다

 

3

 

언어란 사치스런

변명의 조각임을

다 알고 입 다문 채

시간마저 삼켰다가

안개 낀

새벽에 깨어

울부짖는 섬이여

 

 

 

무인도

 

 

산이 절로 높아야

물이 멀리 흐르듯

침묵이 오랠수록

자비는 깊어지는가

파도에

제살을 깎아

좌선하는 수도승

 

사람이 모여 살까

샘물 하나 없이 하고

인간의 언어 따윈

아예 모른 바닷새를

무언의

긴 설법으로

날게 하고 잠들게 하고

 

언어가 없는 곳에

그리움이 어찌 있으랴

바위틈 갯메꽃은

보는 이 없이 피었다 지고

고독은

타고난 죄업

인간만의 굴레인 걸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는

나는 또 무엇인가

마음밭 갈지 않아

들꽃 하나 피우지 못한

둥둥 떠

뿌리조차 없이

흘러가는 섬이네

 

 

 

 

다려도

 

1

 

섬도 물도 아니어서

여라고 하는 걸까

바람에 지워질 듯

여덟 개 점으로 찍혀

태공들

무념의 낚시를

물고 아니 놓는 섬

 

2

 

보고도 가지 못하는

눈앞의 북촌 마을

파도를 베고 누우면

둥둥 떠 밀려나 갈까

달려도

다시 달려도

제자리인 다려도

 

3

 

뿌리 굵은 후박나무

바위도 삭힌 돌밭

갯메꽃 질긴 삶은

짠물에도 붉게 피고

도요새

비운 둥지엔

체온 아직 따습다

 

 

 

내 마음의 바다

 

 

다가가 밀물이거나

돌아서 썰물일 때도

 

항상 그 깊이

그 높이로 노래했거는

 

그대를

가슴에 넣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

 

파도야 내가 언제

내 가슴을 친다 했나

 

모랫벌 깊이 묻은

상처까지 붉게 덧나

 

하루를

부둥켜안고

타악기로 우는 바다

 

 

 

귀덕 포구

 

 

한 해가 저물어도

돌아갈 곳 없는 사람은

주저 말고 귀덕 포구*

돌담 위에 서 보아라

천상병**

하늘로 가듯

바다로 가보아라

 

밀물이면 바다인

작은 여를 바라보며

모든 걸 안아주고

어떻게 감싸는지

작은 배

안고 잠재운

방파제 되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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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의 작은 포구.

**돌아가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생각하며

 

 

                       *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