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쫄븐 갑마장길(3)

김창집 2022. 11. 17. 00:24

*잣성길

잣성길을 따라서

 

 

  잣성은 조선시대 유적으로 제주지역의 목장에 만들어진 10소장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다. 요즘의 목장에는 철주를 박고 철조망을 3~4겹으로 두른 철책으로 울타리를 두르지만, 그게 여의치 않던 당시에는 주민들을 모아 돌을 쌓게 하여 만든 경계용 돌담이다.

 

  이러한 잣성은 말이 한라산 고지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상잣성과 해안쪽 인가나 밭으로 나가지 못하게 쌓는 하잣성, 그리고 그 두 잣성 사이를 막아 목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중잣성으로 구분한다. 쌓을 때는 모은 돌의 크기를 보면서 굽에는 보통 겹담으로 쌓고 그 위로는 큰 돌로 쌓는 것이 보통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 사이는 중잣성으로 되어 있다. 잣성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약 2km 구간은 잣담 오른쪽()으로 삼나무가 심어져 있고, 왼쪽으로는 곳곳에 소나무, 비목나무, 상수리나무, 사스레피나무, 때죽나무 같은 잡목이 자라고 있다. 나무가 없는 곳에는 억새가 많이 자라 바람에 서걱이고, 그 밖으로 풍력발전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는데, 건너에는 태양열 발전시설이 널리 자리 잡았다.

 

 

*큰사슴의 오름 옆 목초밭

 

큰사슴이오름

 

 

갑마장길은 다시 오름으로 이어지는데, 능선 주변엔 억새가 지천으로 깔렸다. 안내판에는 큰사스미오름이라 했지만, 사실 지도나 제주의 오름책에는 대록산(大鹿山)’으로 나와 있다. 표고 474.5m, 비고 125m, 둘레 2794m, 면적 522,097의 대록산은 소록산과 자락이 맞대어 있고, 지형지세가 마치 사슴과 비슷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아무리 보아도 둥근 산체여서 그런 느낌이 안 든다.

오름의 형태는 가파르고 둥근 산체에 동서로 긴 타원형이며, 화구는 정상 쪽에서는 숲으로 덮여 있어 북으로 터진 말굽형 화구를 가진 것으로 보이나, 정상부의 동서 봉우리 사이에 둥그렇게 패어 있는 깊이 55m 원형화구 오름이다. 화구 안사면에는 해송, 삼나무 외에 때죽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등과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능선에는 가시덤불 속 양하 같은 것이 퍼져 있다.

 

 

*산장구마

 

탐라순력도 산장구마

 

 

  정상 남쪽으로 놓인 의자에 앉으면 눈앞으로 드넓은 제동목장과 정석비행장 너머로 눈 덮인 한라산이 보인다. 그런데 벌판에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산장구마교래대렵의 그림이 겹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여기서는 사냥 그림인 교래대렵은 생략하고 목장과 연관된 산장구마(山場駒馬)’를 펼쳐 본다.

 

  ‘산장구마1702(숙종 28) 1015일에 이곳 산장에서 행해졌던 행사 모습을 화공 김남길(金南吉)이 그리고 거기에 내용을 덧붙인 그림이다. 지금 같으면 남조로와 번영로가 만나는 남조로 교차로에서 드론을 띄워 성판악 쪽까지 찍은 사진 같다. 세 군데 둥그런 원장(圓場)과 사장(蛇場)을 설치해 놓고 목책을 쳐 말을 몰아다 점검한다.

 

   이 날은 제주판관과 감목관 김진혁(金振爀), 그리고 정의현감 박상하(朴尙夏)가 참여한 가운데, 결책군 2,602, 구마군 3,720, 목자(牧子)와 보인(保人) 214명이 동원되어 2,375필의 말을 확인했다. 그림에는 성판악을 중앙 위에 크게 그리고 작은 오름들을 그려 이름을 써놓았는데, 오늘날 지명을 연구할 때 크게 활용되고 있다. 위치는 적당히 그려놓았지만 산굼부리(山仇+音夫里岳), 까끄라기(+叱極羅只岳), 말찻오름(+乙左+叱岳) 같은 표기가 재미있다.(여기서 +는 위아래로 붙여 쓴 글자)

 

 

 

모처럼 보는 억새길

 

 

  큰사슴이오름에서 내려와 유채꽃프라자를 거쳐 큰길로 나올 때까지는 그야말로 억새 천국이다. 제주에 있는 억새밭은 개발이나 개간으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으며, 또 무성하던 억새밭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저절로 쇄락의 길을 걷지만 오늘 이곳의 억새만큼은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겠다. 때마침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쳐 은빛 물결은 더욱 장관이다. 하지만 억새는 느끼는 사람의 감정에 따를 뿐, 그 느낌을 강요하진 않는다.

 

  ‘억새는/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달빛 어스름/ 산을 타는 낯익은 발자국 소리/ 억새는/ 서걱서걱 뒤따라갈 뿐/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 꽃다운 나이/ 거적때기 한 장 없이/ 흙이 되어 돌아갈 때/ 억새는/ 안으로만 삭이며 바라볼 뿐/ 결코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죽음보다 깊은 잠/ 풀벌레 소리에 눈뜨고/ 말없이 산을 타는 낯익은 소리/ 눈빛으로 배웅할 뿐/ 억새는/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김수열 억새전문

 

  큰사슴이오름 앞에 위치한 유채꽃 프라자는 2010~2014년 사이 추진된 사귀포시 가시리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진 농촌체험 연수시설이다. 본 건물에 7개의 숙박객실과 독립된 통나무 주택 2채 등 숙박공간과 식당, 카페, 세미나실, 운동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꽃머체

 

꽃머체를 거쳐 나오는 길

 

 

  억새길에서 유채꽃 프라자로 길로 나와 녹산로로 나오기 직전에 왼쪽으로 갑마장길이 이어진다. 분위기는 가시천길과 거의 같다. 1.3km쯤 가면 숲속에 꽃머체가 자리해 있는데, 안내판을 안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꽃머체는 그 규모만 다를 뿐 헹기머체와 같은 크립토돔으로 하천에 인접해 있어 침식작용에 의해 일부 훼손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잘 보존된 편이다. 구실잣밤나무가 주를 이루고 참꽃나무 같은 나무가 꽃을 피워 꽃머체란 이름이 붙었는데, 가시덤불과 나무 때문에 자세하게 찍을 수 없는 게 흠이다. 거기서부터 300m쯤 걸어 나오면 출발지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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