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고산리 수월봉 엉알길(2)

김창집 2022. 11. 26. 00:57

 

화산재 지층과 화산탄

 

 

  ‘수월봉은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 하나지만 남쪽의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쇄설암층은 세계적 수준의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천연기념물 제513호를 알리는 게시판의 첫 문장이다.

 

  수월봉은 화산쇄설물이 화산가스나 수중기와 섞여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빠르게 지표면을 흘러가는 화쇄난류(火碎亂流)’라는 독특한 화산재 운반작용에 의해 쌓여 형성된 응회환의 일부이다. 그런 화산쇄설층이 이렇게 해안절벽을 따라 연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 때문에 외국의 여러 지질학 및 화산학 서적에 표본으로 많이 올라있다.

 

  여기 제시된 사진에 보듯이 모래층, 자갈층, 화산재 층이 질서 있게 쌓이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면서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화산탄이 떨어지는 압력에 의해 지층에 박히는 이른바 탄낭구조(彈囊構造, 아래가 주머니처럼 오목하게 감싸는 구조)도 종종 보인다.

 

 

 

수월봉 정상

 

 

  자구내포구에서 들어선 엉알길은 묘하게도 오름의 본체랄 수 있는 능선과 조금 떨어져 있어 그곳이 통로가 되고, 나가면 교차로가 나온다. 북동쪽으로 당산봉이 듬직하게 앉아 있고 그 사이에서부터 평야가 펼쳐진다. 이곳에 사적 제412호 제주고산리유적이 자리했다. 이곳은 석기시대 융기문토기, 화살촉, 자르개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지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말기 또는 중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표지유적으로 중요하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수월봉 정상과 고산기상대에 오르는 길로, 靈山 水月峰(영산 수월봉)’ 표지석이 나타난다. 이곳 수월봉은 제주 본섬 최서단 언덕으로 하늬바람과 태풍의 길목이다. 그래서 지금 고산기상대를 세웠고, 전에는 기우제도 지냈었다.

 

  고산리 3763번지 일대에 자리한 수월봉은 표고 78m, 둘레 2240m의 원추형 오름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이 오름의 중심은 이 언덕과 차귀도를 외륜산으로 보고, 환상(環狀)의 원형분화구를 연상하면, 바다 한 가운데에 분화구가 위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결론은 오름의 해안절벽 노두(露頭)에 있는 응회암 퇴적층의 분출방향 및 퇴적 양식의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라고 한다.

 

 

 

저쪽 엉알과는 다른 지층이

 

 

  정상에서 남쪽으로 능선길을 내려가면 바닷가로 통하는 길이 있다. 해녀의 집 옆으로 나 있는데 조심스럽게 오름 정상 아래로 가다보면 우리가 다니는 북쪽으로 뻗친 지층과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안내판에 화산재 지층이라 하여 지층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수월봉은 약 18000년 전 뜨거운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든 고리 모양 화산체의 일부이다. 엉알길 절벽 내부에는 수월봉 화산 분출 당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분출물이 쌓인 화산체 지층이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지층은 화산재가 지표면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면서 남긴 분출의 결과물이다.

 

  오름 상부로 이어지는 곳은 억새를 비롯한 소나무가 나 있어 침식을 덜 받았고, 속살이 무른 곳은 아직도 풍화작용으로 화산재가 깎이어 나가고 있다. 모래 알갱이를 살피니 조개껍질이 부서져 생긴 하얀 것들은 안 보이고, 흔히 송이라고 하는 스코리아(scoria)나 현무암이 부서진 것들이다. 어느 정도 굳어 정착한 곳은 새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검은 모래 해변

 

 

  한쪽에는 화산쇄설물 지층 아래 드러난 고산층 진흙이 불투수층이 되다보니, 화산재층에서 나오는 물이 아래로 흘러 이끼들이 파랗게 돋아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여러 층위가 드러나 있는 곳이다. 비교적 짧은 모래밭 아래로 화산체에서 흘러나와 바다와 부딪치면서 굳어버린 현무암이 바다 쪽으로 길게 드러났다. 그 위에서 한가롭게 낚시하고 있는 두 어른의 모습이 멋있는 풍경이 된다.

 

  풀이 자라지 않은 곳에 연흔(連痕)’이란 표지판이 있어 다가서 보니, 물결에 의해 만들어낸 층리란다. 층리는 퇴적암이 가지는 평행의 무늬를 말하는데, 이곳은 아무래도 간빙기를 거치면서 바다의 깊이가 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흔적이리라. 여기의 것들은 퇴적암이라기보다 모래가 덜 굳어진 상태로 있어 건드리면 알갱이가 조금씩 떨어진다.

 

 

 

해녀의 집

 

 

  해녀의 집 옆으로 나오면서 안내판을 보니, 안쓰러운 사연이 적혀있다. ‘해녀의 수가 1950년대에 7천 명에 육박하였으나, 매년 감소하여 현재는 약 45백여 명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증거다. 생각해 보니 201812, 이곳 수월봉 해안을 배경으로 KBS 아침 드라마 인간극장을 방영한 바 있다. 내용은 한 억척 해녀의 이야기지만 이곳 해녀들의 생활 모습을 다룬 것이었다.

 

  바다 속이 궁금하여 잠수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는데, 아무래도 흰 모래가 깔린 우리 마을 바다 속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물빛이 너무 어둡다. 문득 옆 동네 용수리 출신 김신자 시인의 시조 난바르가 떠오른다.

 

  ‘큰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흐릿하다// 발 디딜 곳 없다 세상은 수심이 너무 깊어 발이 닿지 않았다 태안 만리포 바다는 개똥밭에 드는 사람도 뇌선을 먹는다 칠성판을 짊어지고 오늘도 얼마나 저승길을 오고 갔을까 불어터진 그녀의 삶은 바다 향해 작살 겨눈 고구려의 전사답다 호멩이 하나 빗창 하나 본조겡이 하나 짊어진 결의도 하나 세상 이치를 몰라서인가 물때를 잘못 만나서인가 한 생을 물구나무로 살아가는 큰언니의 삶// 내게는 어느 노정에서나 눈발 같은 거였다’  -김신자 시조 난바르모두.

   
             * 이 글은 뉴제주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필자의 글입니다.

 

 

'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수리 당산봉 트레일(2)  (2) 2022.12.06
용수리 당산봉 트레일(1)  (0) 2022.12.01
고산리 수월봉 엉알길(1)  (2) 2022.11.22
쫄븐 갑마장길(3)  (1) 2022.11.17
쫄븐 갑마장길(2)  (0) 202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