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화상
다행스럽게, 주위에 등불은 없었습니다
별빛을 접속신호로 착각하고, 지금도
막막한 어둠 속을 날아가고 있는 부나비 한 마리
♧ 손금
타고난 사주팔자
어차피 운명이라 여기지만
차마 그 길을 따르기란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그믐밤만 같습니다
왼 손바닥, 손금으로 꼭 쥐어진
‘시’라는 글씨 한 자
♧ 레드와인
자신을 고스란히 으깨지 않고서는, 결코
다른 이의 영혼을
뜨겁고 붉게 물들일 수 없는,
시는 포도주입니다.
♧ 눈
누가 이렇게도 다정한
소식 보내옵니까
받아 쥐고 돌아서면
금방 눈물이 되는,
♧ 왼쪽에서
내 심장이
왼쪽에서 펄떡이는 것은
뜨겁게 안았을 때, 비어 있을
당신의 오른쪽 가슴을 위해서입니다.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작가마을, 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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