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성주 시집 '구멍'의 시(1)

김창집 2022. 11. 28. 01:44

 

할머니의 은행나무

 

 

달랑 물병 하나 싣고

유모차 밀며 은행나무로 온 할머니

여름 내 뛰놀던 손자 손녀들

뽕뽕뽕뽕 뀌어댄 방귀들이 잘 익었다고

무릎 위에 앉은 노란 은행잎이

올가을 시집가는 큰손녀 엉덩짝 같다고

힘 다 소진된 방귀같이 피시시 웃는다

한 열흘쯤 쓸어 담고

또 한 열흘쯤 손 다듬으면

내민 고사리 손 위에 앉을

오백원 동전 두어 닢

허연 머리 위로

후두두두

 

 

 

폭풍우 지나간 느티나무

 

 

등 가려워

몸 흔들었나 보다

박새네 집 기우뚱거리게 했나 보다

간밤, 그래서

나무는 울었나 보다

어미 새 날아든 느티나무

푸르다

 

 

 

이어도

 

 

폭풍우 지나간

늙은 감나무 가지 위, 머뭇거리던

달이 구름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 있다

 

아비 바다로 나간, 기일

제사상 물린 어미

수세미로 빡빡 지워도 지워도

이어도 여인들에 묻혀 히히덕거리는 아비 얼굴

밥그릇 국그릇마다 어른거린다

 

검색을 끝낸

컴퓨터 화면 위, 두 눈 부릅뜬

부표 하나 망망대해 저편을 보고 있다

 

 

 

오당빌레

 

 

  동틀 무렵 오당빌레 휭 구멍 뚫린 늙은 팽나무 가지에 지전 걸고 타래실도 걸고 밑둥치 큰 구멍 앞에 제물 올려놓고 신권으로 바꿔온 만원 석장도 올려놓고 봉철이 어멍 허부죽허부죽 절하고 심방은 요령 흔들고

  -오당빌레 당신님아 이 정성을 받아줍서 이 정성 받아그네 하가리 양씨 집안 자손 줄 내리옵서- 서럽게 애절하게 오르락내리락 가락도 붙여가며

 

  아방이 이웃마을 과수댁을 드나든다는 소문이 난다든지 아기가 밤새 경기를 일으키며 운다든지 누렁이가 난산을 한다든지 이런 날이면 어멍은 조왕에도 빌어보고 칠성에게도 빌어보고 붉은팥에 왕소금 섞어 동티난 곳을 찾아 뿌려도 보고 하다하다 안되면 찾아오는 오당빌레 팽나무 그 큰 구멍

 

  어쩌다 골목어귀 팽나무 가지 우에 까마귀 앉아 울면 이삼일 안으로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뒤란의 입춘

 

 

뒤란에 서서

눈은 꽃구경인데

귀는 딴청이다

 

어떵 살안디

살암시난 살아집디다

 

묻는 동백도

답하는 매화도

 

울먹울먹

토해내는 말

 

눈은 가벼이 동지섣달 넘었는데

귀는 환청 속을 헤매고 있다

 

 

                              *김성주 시집 구멍(심지,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