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새
우리나라 오월 바람엔
딱새 소리 숨어 있다
바다 건너 사가현,
그 깊숙한 산골 비요秘窯
흰 얼룩 굴리며 우는 허기진 딱새가 있다
추임새 넣지 마라,
필시 불의 시련이라면
임진란에 끌려 왔나 팔백 팔십 조선 도공
불대장 호령소리가
해원굿에 묻어나는
나베시마 흙으로 골동품 가게 전전하는
무연고 접시 한 점,
한 판 굿에 잦아들면,
사 백년 불 못 끈 그리움, 서늘하게 만져 본다
만져본다, 문양 대신 밥티 같은 텃새울음
동강난 산하라도 한번이나 담고 싶다
오늘 밤 저 가마터에 불 당겨라, 찔레여
♧ 어느 기일
괭이갈매기 똥인가 했다
벼랑 끝에 저것은,
갯바위 똥겡이도
심심하면 찾아와서
온종일 풍경소리로
놀다가는 절이 있다
세상 길 끊긴 자리 지귀도와 마주한다
망장포, 파도가 후벼 판 이 망장포구에
절 하나 세우고 뜨신 대처승 그 뜻 모르겠다
가고 싶다
바다만 보면 당신은 상군 해녀
강남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半이옌 헌다
육십년 어머님 태왁 숨비소리 떠서 돈다
숨비소리 독경소리, 독경소리 숨비소리
그 행간에 특근한다는 막내 동생 휴대폰소리
문전제 올리고 나면 제기 같은 절 한 채
♧ 방선문 딱따구리
나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고갱처럼 고민하던 한라산 계곡하나
타이티 섬 같은 바위를 뻥 뚫어 놓으셨다
아뢰어라, 신선이 방문한다는 문 앞에서
방명록 서명하듯 바위마다 뜬 저 이름들
마지막 유배지에서 무얼 고해 바쳤을까
어느 해부터인가 꽝꽝나무 자잘한 꽃들을
연신 숟가락으로 공양하듯 퍼내는 여인
불치병 자식을 위한 자갈돌도 져 나른다
깨트려라, 2대 독자 몸속의 몹쓸 병을
순순히 하류로 못 가 나뒹구는 저 자갈돌들
방선문 딱따구리여, 따악, 딱 깨트려라
♧ 다랑쉬오름
따라비, 좌보미, 비치미 오름 건너
높은오름, 동검은이, 용눈이 끼고 돌면,
하늘에 여왕의 치맛자락 턱 하니 걸려 있다
다랑쉬, 이삿날 슬쩍 내다버린 저 놋화로
불 한 번 토해놓고 잠시 쉬는 분화구여
화산탄 날아간 자리, 증언하라. 꽃향유
증언하라, 그 자리 오로 숨던 다랑쉬동굴
소개령 끝난 반세기 댓잎들은 돌아와도
4·3의 ‘4’자도 금했던 역사는 갇혀있다
왕릉이 아니라데, 피라밋도 아니라데
무자년 솥과 사발, 녹 먹은 탄피 몇 개
한 마을 이장해 가듯, 고총 같은 동굴이여
♧ 자리젓
이대로 끝장났다 아직은 말하지 마라
대가리에서 지느러미 또 탱탱 알밴 창자까지
한 소절 제주사투리, 그마저 삭았다 해도
자리라면 보목리 자리 한 일년 푹 절어도
바다의 야성 같은 왕가시는 살아 있다
딱 한 번 내뱉지 않고 통째로는 못 삼킨다
그렇다, 자리가 녹아 물이 되지 못하고
온몸을 그냥 그대로 온전히 내놓는 것은
아직은 그리운 이름 못 빼냈기 때문이다
*오승철 시조집 『사고 싶은 노을』 (태학사, 200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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