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조집 '사고 싶은 노을'의 시조(1)

김창집 2022. 11. 27. 01:18

 

딱새

 

 

우리나라 오월 바람엔

딱새 소리 숨어 있다

바다 건너 사가현,

그 깊숙한 산골 비요秘窯

흰 얼룩 굴리며 우는 허기진 딱새가 있다

 

추임새 넣지 마라,

필시 불의 시련이라면

임진란에 끌려 왔나 팔백 팔십 조선 도공

불대장 호령소리가

해원굿에 묻어나는

 

나베시마 흙으로 골동품 가게 전전하는

무연고 접시 한 점,

한 판 굿에 잦아들면,

사 백년 불 못 끈 그리움, 서늘하게 만져 본다

 

만져본다, 문양 대신 밥티 같은 텃새울음

동강난 산하라도 한번이나 담고 싶다

오늘 밤 저 가마터에 불 당겨라, 찔레여

 

 

 

어느 기일

 

 

괭이갈매기 똥인가 했다

벼랑 끝에 저것은,

갯바위 똥겡이도

심심하면 찾아와서

온종일 풍경소리로

놀다가는 절이 있다

 

세상 길 끊긴 자리 지귀도와 마주한다

망장포, 파도가 후벼 판 이 망장포구에

절 하나 세우고 뜨신 대처승 그 뜻 모르겠다

 

가고 싶다

바다만 보면 당신은 상군 해녀

강남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옌 헌다

육십년 어머님 태왁 숨비소리 떠서 돈다

 

숨비소리 독경소리, 독경소리 숨비소리

그 행간에 특근한다는 막내 동생 휴대폰소리

문전제 올리고 나면 제기 같은 절 한 채

 

 

 

방선문 딱따구리

 

 

나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고갱처럼 고민하던 한라산 계곡하나

타이티 섬 같은 바위를 뻥 뚫어 놓으셨다

 

아뢰어라, 신선이 방문한다는 문 앞에서

방명록 서명하듯 바위마다 뜬 저 이름들

마지막 유배지에서 무얼 고해 바쳤을까

 

어느 해부터인가 꽝꽝나무 자잘한 꽃들을

연신 숟가락으로 공양하듯 퍼내는 여인

불치병 자식을 위한 자갈돌도 져 나른다

 

깨트려라, 2대 독자 몸속의 몹쓸 병을

순순히 하류로 못 가 나뒹구는 저 자갈돌들

방선문 딱따구리여, 따악, 딱 깨트려라

 

 

 

다랑쉬오름

 

 

따라비, 좌보미, 비치미 오름 건너

높은오름, 동검은이, 용눈이 끼고 돌면,

하늘에 여왕의 치맛자락 턱 하니 걸려 있다

 

다랑쉬, 이삿날 슬쩍 내다버린 저 놋화로

불 한 번 토해놓고 잠시 쉬는 분화구여

화산탄 날아간 자리, 증언하라. 꽃향유

 

증언하라, 그 자리 오로 숨던 다랑쉬동굴

소개령 끝난 반세기 댓잎들은 돌아와도

4·3‘4’자도 금했던 역사는 갇혀있다

 

왕릉이 아니라데, 피라밋도 아니라데

무자년 솥과 사발, 녹 먹은 탄피 몇 개

한 마을 이장해 가듯, 고총 같은 동굴이여

 

 

 

자리젓

 

 

이대로 끝장났다 아직은 말하지 마라

대가리에서 지느러미 또 탱탱 알밴 창자까지

한 소절 제주사투리, 그마저 삭았다 해도

 

자리라면 보목리 자리 한 일년 푹 절어도

바다의 야성 같은 왕가시는 살아 있다

딱 한 번 내뱉지 않고 통째로는 못 삼킨다

 

그렇다, 자리가 녹아 물이 되지 못하고

온몸을 그냥 그대로 온전히 내놓는 것은

아직은 그리운 이름 못 빼냈기 때문이다

 

 

                  *오승철 시조집 사고 싶은 노을(태학사, 200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