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한라산문학 제35집 '태초에 한라산은 활화산이었네'의 시(1)

김창집 2023. 1. 13. 00:44

 

[테마시 돌담]

 

 

7월의 근위병 김대운

 

 

엉성한 몸채

화산으로 갈기갈기 상처 난 몸

제주 들녘에 옹기종기 모여 선을 그어

말없이 서 있다

 

푸르름이 가득한 콩밭 사이

태양을 바라보며

비바람 맞은 지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그대로이다

 

파란 하늘 아래 루비처럼 붉은 속살을 간직한 수박들

먹구름 몰려와 불안했지만 어느새 너그러운 마음

거인의 손바닥 같은 물먹은 잎사귀는 당신에게 향한다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추는 옥수수

혹시나 다칠까 봐 자신을 낮춘 엄마 마음처럼

모든 응석을 다 받는 고향의 마당

 

오랜만에 태평양을 바라보니

해바라기처럼 가운데 움푹 파였지만

제주 들녘의 초록빛 황금은 당신의 자식이 되었다

 

 

 

내가 잘하는 거 김도경

 

 

먼 산 바라보기

태풍이 와도 눈보라 쳐도

숨 잘 쉬는 거

조금만 들어앉아도

무너져 내릴 터에

한 마음 한 생각

잘 먹는 거

바람이 불면

틈 틈 틈으로 잘

흘려보내는 거

먼 산에서 눈 돌려

옆도 보고 뒤도 볼 줄 아는 거

이끼가 덕담이라는 걸

아는 거

돌담을 닮아가는 거

 

 

 

 살레-칭 밧 김항신

 

 

원당봉 산자락에

살레 살레 층이 있어

살레-칭이라 했을까

 

둘레길 지나다 보니

원당사 절

아직도

가부좌 틀고 있네

 

어머니 일 가시고 나면

아버지 등에 동생이 있고

아버지 손에 내가 있을 때

울담 돌아 살레-칭으로

참외 도둑 내 모시던

아슴아슴 아리던 자리

 

아버지 상여 원당사에 들러 인사를 하고

설기-(-시리) 층층 설상에 올리던

공양주 보살 아직 함께인 듯

눈에 아림은

 

()이진 손

() 늘리며

일용할 양식 조 보리 감저 심던

살레-칭 밧

 

ᄎᆞᆷ웨(멜론) 맛도 참 좋았는데

 

 

 

제주 돌담길 백용천

 

 

봉인된 편지가 구멍에서 다른 구멍으로 배달된다

어느 밭에서 숨죽인 소리가 어느 골목엔 끌려간

이야기가 한 담씩 쌓여 있다

나서지 못하는 올레길,

시바람 타고 오는 남자가 있을까

두렵기도 설레기도 하는 올레 돌담길

오래된 이끼들이

구멍 구멍 퍼렇게 번져 있다

세월이 바람이 세게 몰아칠수록 담구멍은,

동네 이야기로 살아 돌아온다

할머니는 힘없이 얹은 손등, 핏줄처럼 죽지

않은 줄기들이 힘 있게 얽혀 있다

바람이 세차고 들면 끝없이 퍼런 물결, 그때마다 번식하는 그리움

멀리, 돌 하나가 굴러온다

오래된 기침을 돌담에 얹으면서 할머니는

돌아올 남자인 줄 알고

붕대 같은 목도리를 살아온 소실점처럼 푼다

 

 

 

밭담 부정일

 

 

태초에 한라산은 활화산이었네

 

폭발은 불타는 돌덩이를 섬 곳곳에 쏟아부었네

용암은 지하에서 바다로 흐르다 바위로 멈추고

여러 천년이 흘러

산과 오름과 지하에 폭발의 흔적만 있을 때

 

정착한 옛사람들은 돌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네

오고 가는 길, 구르고 치이는 것이 돌이라

집도 돌이고 돼지 밥그릇마저 돌그릇

팽나무 밑 쉬는 곳도 돌이었으니

밭과 밭 사이 담이라도 쌓을 수밖에

흑룡만리라는 밭담은 만리장성보다 더 길어

크고 작은 돌 하나하나가

옛사람의 피와 땀이며 눈물이었네

내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가 달밤에 밭담 쌓다가

기대어 잠들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한라산문학동인회 간 한라산문학35(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