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1월호의 시(2)

김창집 2023. 1. 15. 00:56

 

개망초 이규홍

 

 

남한강 둑방 따라

하얗게 핀 들꽃 무리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망초, 누가 지은 이름이기에

이다지도 불경스러운가

망할 놈의 시국이라니

얼마나 절망 깊었기에

날마다 하얗게 쓰러져야만 하는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

어디에 살든 절망에

쉽게 주눅들지 마라

희망의 가지 늘어놓고

온종일 빙그레 웃고 있는

이웃사촌 같은 꽃

찬바람 불 때마다

꼭 안아주고 싶다

 

 

 

시간 - 도경희

 

 

이슬 터는 새벽

소풀*을 벤다

 

손에 감기는 어리어리한 풀이

소쿠리에 수평으로 눕는다

 

시퍼런 날에 드러난 보얀 밑동

천사들처럼 상처가 저절로 치유된다

열흘이면 본살 같이 아물어

몸을 또 내어 줄 것이다

 

초록 실로 공단을 짜던

야트막한 밭에

풀무치가 흘려놓은 숨결

고운 흰구름이 된다

 

---

*부추의 방언.

 

 

 

첫새벽 방순미

 

 

북암령 무릎까지 차오른 눈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걸어서 시침질

 

밤새도록 꿰맨

삐뚤삐뚤한 능선

이불 삼아 덮은 산속

 

차갑고 어두운 밤

별만이 따뜻한 하늘 바라보며

다시 올 희망처럼 기다리는 여명

 

 

 

홍시 이진환

 

 

,

떨어져

서산을 물들인

홍시

 

마른 침 삼키며 바라보는

 

홍 씨네 할매

 

어쩌나 어쩌나

떨어질까

까맣게 속 타는

,

 

노을

 

 

 

다시 운주사에서 - 김용태

 

 

참 무량도 했을 것입니다, 당신

 

밤은 깊은데

 

예나 지금이나

수컷의 일이란 바람 같은 것

눈길을

먼발치에 두고

졸인 가슴으로

꺼칠해진 골목에서

서성거렸을 것입니다, 당신

 

이 저녁, 나는

꽃 진 목련 나무 아래서

긴 허물을 벗기 위해 몸을 꺾는데

천만번 생을 돌면 다시 닿을까

눈먼 육신 벌서 듯

촉수 늘이어 헤매다

나란히 와불 되어 눕고도 싶었을 겁니다, 당신

 

헐겁고 때론 모진 연이

스쳐 지난 바람처럼, 이젠

그림자마저 찾을 길 없고

어둠뿐인 달의 뒤편을

속절없이 거닐다

어디에선가

축생으로라도 윤회를 빌며

기다리는 그 속이

참으로 무량도 했을 것입니다, 당신

 

아직 아침은 멀고

채 벗지 못한 허물이

허리 아래 있습니다

 

 

                         * 월간 우리1월호(통권 제4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