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십에 나무심기 – 장현두
그렇습니다.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살아 있으면 나날이 새날이니까요
나무 한 그루 심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땅에 심으나 실은 제 마음에 심습니다
나무가 거칠어진 마음을 촉촉이 닦아주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가슴 뿌듯한 의젓한 나무의 모습을 그리며
제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오 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제 아들 손주들이 보고 또 그 친구들이며
모르는 누구도 보고 행복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팔십 아니라 구십에 아니 세상 떠나는 날까지
나무를 심겠습니다
나무는 희망이고 삶입니다
♧ 호미 - 정창희
밭 귀퉁이에 주인 없는 호미가
녹슬고 있다
평생 호미와 살면서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하고
꼬부리고 앉아 땅만 일궜다
쩍쩍 갈라진 손에 굳은살이 못 박히고
호미도 닳고
어머니 무릎 연골도 닳았다
허리 굽은 호미를
놓으시던 날 풀이 누웠다
♧ 어머니의 기도 – 변광옥
삭정이 끝에 매달린 찬바람
가는 길 멈추고
윙윙 소리 내어 울던 밤
장독대 정화수 떠놓고
가족의 무병장수 빌며
노심초사 길 떠난 자식
앞길을 빌던 어머니
당신 가슴엔
천사의 사랑이 있고
가시고기* 모성이 담겼습니다
그 정성
그 사랑
아슴아슴 더듬으니
은혜로움 태산 되어
가슴속 강물로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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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들이 자랄 때까지 어미의 몸을 뜯어 먹혀 새끼들을 자라게 함.
♧ 그때는 몰랐다 – 백인수
어머니는 추운 겨울에도
빛바랜 담요와
꽃무늬 카시미론 이불을
덮고 주무셨다
두툼하고 따뜻한 이부자리를 깔아드려도
다음에 보면 깨끗이 치워져 있다
그때는 몰랐다
빛바랜 담요와 카시미론 이불
고집한 이유를
늙고 여윈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솜이불
어머니 돌아가신지 수 삼 년
아직도
손주며느리 혼숫감 솜이불이
포장끈도 풀지 않은 채
빛바랜 장록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다
♧ 겨울산 – 박수성
산하를 휘몰아친 격동의 바람
송두리째 혼돈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을 품어 안던 계절과
푸르던 날의 꿈결 같은 시간
거칠어진 얼굴 손발이 트도록
살아남으려 동토를 누비건만
등을 덮치는 시련의 검은 날개
비명*悲鳴은 바람에 실려 갔다
쌩쌩 사무라이 칼날 바람에
쉽사리 길을 내어준 적막강산
물려받은 세간살이 헤집어
귀금속 쇠붙이까지 수탈했던
일제강점기의 촌부처럼 헐벗은
가난한 나목과 비통한 바위들
눈이라도 내려 덮어주었으면
산은 마른 등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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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悲鳴) - 슬피 욺, 또는 그런 울음소리.
-일이 매우 위급하거나 몹시 두려움을 느낄 때 지르는 외마디 소리.
*계간 『산림문학』 2022년 겨울(제4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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