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백문학' 2022 제2호의 시(3)

김창집 2023. 1. 30. 01:01

*김춘옥의 '서천꽃밭 할락궁이'에서

 

고독에 대하여 - 강영은

 

 

  내 몸속에 서천꽃밭이 들어있다

 

  이름도 낯선 도환생꽃,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들로 만발하다 깨어진 화분에 몇 포기의 그늘을 옮겨 심는 나는 그 꽃밭을 가꾸는 꽃 감관

 

  꽃 울음 받아 적는 저물녘이면 새가 날아가는 서쪽 방향에 대해 붉다, 라고 쓴다 산담 아래 흩어진 깃털에 대해 쓴다

 

  불에 탄 돌덩이가 기어 다니고 느닷없는 바람 몰아치는 곳, 언제부터 섬이었는지 활화산을 삼킨 내가 그 꽃밭의 배후여서

 

  웅크린 섬의 둘레에 어두워가는 바다가 들어앉았다

 

  새를 꺼내보렴 너름 볼 수 있을 거야, 새를 새로 꺼내는 파도 속에서 나는 나로부터 가장 가까운 새를 만진다 어둠이 무거워 날지 못하는 새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거기서부터 내 몸이 파도친다 나의 은 그곳에 가장 큰 저승을 들여놓았다

 

 

 

능내역 1 김미순

 

 

이제

기차는 오지 않는다

 

역으로 가는

길지 않은 골목길은

적막하다

 

옛날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시간이 멈춰 선 곳

마땅히 갈 곳 없는 바람이나

가끔씩 와서

툭툭

발길질하고 간다

 

 

 

 

비자림 콘서트 - 김항신

    -동백의 하루

 

 

화려한 동백들의 향연

코로나 펜더믹 끼고 우리는 걸었다

얼마 만에 와본 숲이던가

 

우린 자연스레 자리를 잡아

한 곡 한 곡 낭송이 이어지고

 

팔공시대, 이루지 못했던

남녀의 사랑이

아침 편지

촉촉이 가슴 적시던 시절

 

그 시린 사연이

 

비자림 숲에서

목메인

울음으로

향연 불러낼 때

 

우리는

사랑이여를 부른다

약속이나 하듯

선율은

비자림에 빛을 발한다

영원한 동백의 세레나데를

 

 

 

곁에 있는 듯 서근숙

 

 

봉숭아 꽃물 들려주던 마음 여린 딸

하얀 구름이 길게 누운 나라에서

버텨낸 긴 시간

 

세월의 나이가 성숙해져

아기에게 암죽을 떠먹이는 손자

 

날마다 카톡 속 아가를 본다

눈동자를 맞춰본다

 

나를 몰라볼 증손녀

추레하게 늙기 전에 얼른

만나보고 싶다

 

 

 

 

거역할 수 없는 당신 오옥단

 

 

   목요일엔 시장에 간다. 유모차도 아닌 손수레를 끌고 오십견 통증을 함께 싣고 그가 좋아하는 파프리카를 사러 간다. ‘그리운 금강산비목사이에서 떠돌다가 살아 돌아온 날 눈부시게 쏟아지는 오후 세 시의 햇살이 힘겨워 눈을 감았던 사람, 면역력을 길러 주려고 사러 간다.

 

  파프리카엔 노오란 방, 빨간 방, 주황색 방, 방마다 침대 하나에 의사 하나. 진종일 방을 순례한다.

  오른 팔과 다리가 하나 없어도 사랑은 충만하다.

  왼손으로 음악을 켠다. 슬프도록 맑은 하늘이 내려온다. 침대 위에서 심장이 살아있음을 고백한다. 고단한 몸이 숨죽여 흐느낀다. 그이 얼굴엔 홍조가 핀다.

 

  월화수금은 재활하고 목요일엔 시장에 간다.

  한적한 가게 앞을 자유를 누리며 휘젓고 다닌다. 장바구니에서 그가 미소 짓는다.

  거역할 수 없는 질긴 인연, 반신불수인 당신을 싣고 갈 수밖에 없는 수레 위로 살가운 해연풍이 불어온다.

  펄떡이는 생선과 꿈틀대는 해삼이 따라온다. 아주 오래된 전설 혹은 아내의 꿈.

 

 

           *동백문학회 간 동백문학2022 2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