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1월호의 시(4)

김창집 2023. 1. 28. 09:39

 

 

동구 밖에서 - 김석규

 

 

동구 밖 언덕바지 정자나무 아래

아이들 하나둘 모여들어

장에 간 아버지 어머니 기다리는데

하얗게 굽이 돌아간 신작로 쪽으로

목 늘여 까치발로 눈길 보낸다

새 양말 새 고무신 사 온다며

지푸라기에 발 치수 재어 갔는데

연필도 공책도 눈깔사탕도 들었을 텐데

이름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

팔에 다랑귀 뛰며 하나둘 돌아가고

아직도 남아 기다리고 섰는 아이

등에 업힌 보리동생 자꾸만 칭얼대는데

하얀 신작로 쪽으로 땅거미 슬리도록

어머니 그림자 아직도 기척 없고.

 

 

 

산눈시山眼詩 19 김영호

 

 

나무가 저의 온 몸을 쥐어짠 피눈물로

꽃을 피우듯

 

시인은 중생의 피눈물을 쥐어짠 영혼으로

시를 피운다.

 

 

 

청춘은 - 김은우

 

 

청춘은 사랑하기 좋은 때

기꺼이 실패하고 기꺼이 낭비해도 좋은 때

 

기대감으로 부푼 꿈들로

사방이 빛으로 가득했지

 

흩어지는 구름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건들거리며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고

 

무모하게

격렬하게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서서

더딘 시간에 대해 생각했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잃어버리는

다잡으려 해도 다잡아지지 않는 시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에서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졌지

 

꽃이 지는 이유 따윈 안중에도 없는

가늠할 수 없는 미래가 불확실한

 

수정할 수도 삭제할 수도 없는

시간이 서서히 흘러갔지

 

 

 

돌림병 도경희

 

 

벌들이 보이지 않는다

온갖 열매 땅에서 맺지 못하니

조용히 시든다 아픈 숲이

 

히어리 생강나무 산수유

젊은 날숨처럼 새롭게 깨어나

꿀 흐른다 외친다

 

날개옷 얇게 걸친 꽃들의 이다지오

어서 오라 눈짓을 준다

한들한들 원무를 춘다

 

오지 않는 꿀벌들

나무들 쿨룩거린다

병 깊은 숲이

 

 

 

화장 김용태

 

 

울지 마라

 

저 불구덩이 속에서

네가 나왔느니

 

달 항아리, 같던

 

어머니는

지금

 

환하게

소신공양 중이다

 

 

                 *월간 우리20231월호(통권4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