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유종 시집 '푸른 독을 품는 시간'의 시(3)

김창집 2023. 1. 31. 10:05

 

소통疏通

 

 

  디젤기관차 기관 공기함 핸드 홀 커버의 조임 수치는 따로 정해진 게 없다 밸브 손잡이를 적당한 악력으로 돌리다 새끼손가락이 묵직해진다 싶으면, 렌치로 다시 한 바퀴 반을 돌려가며 홀 커버 조임치 음원을 찾아낸다 투명한 합금강 신호음은 손가락들만 들을 수 있어 하는 화음和音이 잡힐 때까지 몇 번의 몸 신호를 보내고, 손가락 촉수도 만져지는 음보音譜를 온몸 구석구석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사람과 기계가 만나는 접점이 찍히는 날 사람은 기계를 닮아가고 기계는 사람을 닮아간다 사람은 비로소 기름밥을 먹고 기관차는 철마가 되어 철길을 내달리는 것이다 언젠가 먼 길 달려온 기관차 배장기에 맺힌 핏물을 조심스럽게 닦아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배장기에 얹혀 있는 상처를 달래며 종일 휘청거렸다

 

 

 

 

 

정기 검수 차량 볼스타*

붙어 앙버티는 머리카락 몇 올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1톤의 무게를 버틴다는

안전화 발끝으로 꾹꾹 눌러 다졌다

잠시 흔들리는 생

안에서 단단하시라고

이제 세상과 불화를

끝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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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스타 : 철도 차량 전 중량을 받치는 하부 주행 장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무안역 구내에서 선로 작업 중 순직한 한 철도노동자를 기억하며

 

 

내세의 밤 차단기에 걸려 오지 않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꽃잎처럼 흩어져버린

무안에서 무탈을 빼앗겨버린

안개 자욱한 철길

철야 작업 끝 쓴 입맛 다시던

무개차 위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두꺼운 밤의 겉옷 한 꺼풀씩 벗겨내면

새벽이 오고, 또 새벽이 오고

그리고 또 허기진 새벽

아내와 어린아이를 뒤로하고

안개에 묻혀버린 젊은 철도원 눈동자

밤은 고요하고 거룩하고

첫닭이 울기 전 너를 부정한

그날 새벽이 선로에 찍혀 신음하네

열차가 그냥 선로 위를 달리는 것은 아니네

 

 

 

시인

 

 

몽골 초원 며칠 쏘다니다가

마두금 켜는 소리 아득한 사막을 건너다가

날이 밝으면 마르크스 걸린 벽을 보고

한 시간쯤 명상에 잠긴다는 시인*의 말

모래처럼 씹었네

사위는 노을 등지고 초원에 선 유목민 눈을

호미처럼 흐르는 툴강의 뒤척임을

연인에게도 들리지 않게 가만히*

안으로 흐느끼는 마른 눈물 두 손으로 받았네

자궁에서 흐르는 붉은 피 꼬리로 닦아 내며

사막을 건넌 낙타 눈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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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딘수렌 우리앙카이 : 몽골의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의 시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말들의 최후

 

 

  바닷가 찻집에 사람들이 가득 담겨 있네 삼키지 못한 말들이 넘쳐 차탁을 더럽히고 아이의 옷에 얼룩지네 찻집 옆 이팝나무 꽃은 피어 전생을 살다간 사람을 절망 또는 분노가 이만큼 자랄 수 있다고 그래서 해마다 시청 용역들은 전생의 절망과 분노가 세상을 덮어버리기 전에 자르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아 검은 커피에 얼룩진 아이가 이팝나무 잘려 나간 가느다란 팔을 가리키지만 찻집에서 너무 많은 말들을 쏟아낸 그녀는 곧 쓰러질 것 같아 아이의 팔을 잡고 집으로 가네

 

  용역들의 침묵 속에 지친 여자를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묶어놓고 길게 자란 혀를 잘라 바다에 버릴 것 같네 토막 난 말들이 출렁이는 파도에 부서질 것 같네 용역들이 이팝나무를 자르고 과거를 자르고 현대사를 자르고 사지를 자르고 혀를 자르고 자르다 보면 마구마구 절단난 전생의 무덤들 위에 언젠가 우 우 우 늑대처럼 우는 종족이 출현하겠네 말들은 바다를 떠돌거나 땅 속에 묻히겠네

 

 

 

        * 유종 시집 푸른 독을 품는 시간(도서출판b,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