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대 - 김진숙
산 하나 깨뜨리며 아기천사 온단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얼마나 씩씩한지
첫울음 터질 때마다 내 심장도 뛰었지
보리낭 깔고 누워 아이 낳던 그 옛날
세상 모든 통증을 받아내신 뭉툭한 손
아흔 살 어머니 이름은 지금도 영희산파
♧ 요새2022 – 김정숙
1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가뭄에
흐르는 물 노는 물 사는 물이 다 말라
피 같은 요새보증금
뜯어먹고 있는 중
2
요새는 날개가 없다
그래서 날일 날품도 없지
날개 대신 얻은 손발로 최저 시급 일구며
일회용 둥지를 틀고
새 날을 새발로 사는 중
3
언제까지 요새를 제물로 받쳐야 하나!
죽어도 끝나지 않을 전쟁과 독 오른 자본
붉은 물 잔뜩 든 나도
바스라져 가는 중
♧ 국민체조 – 오영호
신산공원
아침 여섯 시
경쾌한 음악 소리에
숨쉬기 운동부터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굳었던
내 사지가 풀리고
엔도르핀 퍼지는
♧ 족쇄를 풀어줘 – 장영춘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저 문만 나서면
몇 년째 창살 없는 방안에 갇힌 그대여
닿을 듯 닿지 못하는 향수병 목각 기린
산 너머 초록 잎들 마구마구 손 흔들면
아프리카 드넓은 저 질주의 본능으로
소나기 맞으러 간다.
겅중겅중 목 빼 들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 총총 손 내밀면
코뿔소 작은 샘터에 손에 손잡고 마중 오겠지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어
족쇄를 풀어줘
♧ 전공과목 – 조한일
누구나 수강하는
생(生)이란 전공과목
수많은 선택지에
시험은 버거워도
정답이
없는 거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 어리연꽃 - 한희정
파르르
저 여린 몸짓,
세상이치 다 알아
채근하지 않아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단박에
아침 해 뜨듯
불쑥 깨어 앉았어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 2022년 여울호(통권 79호)에서
*사진 : 적도의 야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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