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2년 겨울호의 시(6)

김창집 2023. 2. 2. 02:29

 

 

 

 

환대 - 김진숙

 

 

산 하나 깨뜨리며 아기천사 온단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얼마나 씩씩한지

 

첫울음 터질 때마다 내 심장도 뛰었지

 

 

보리낭 깔고 누워 아이 낳던 그 옛날

 

세상 모든 통증을 받아내신 뭉툭한 손

 

아흔 살 어머니 이름은 지금도 영희산파

 

 

 

 요새2022  김정숙

 

 

1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가뭄에

흐르는 물 노는 물 사는 물이 다 말라

피 같은 요새보증금

뜯어먹고 있는 중

 

2

요새는 날개가 없다

그래서 날일 날품도 없지

날개 대신 얻은 손발로 최저 시급 일구며

일회용 둥지를 틀고

새 날을 새발로 사는 중

 

3

언제까지 요새를 제물로 받쳐야 하나!

죽어도 끝나지 않을 전쟁과 독 오른 자본

붉은 물 잔뜩 든 나도

바스라져 가는 중

 

 

 

국민체조 오영호

 

 

신산공원

아침 여섯 시

경쾌한 음악 소리에

 

숨쉬기 운동부터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굳었던

내 사지가 풀리고

엔도르핀 퍼지는

 

 

 

족쇄를 풀어줘 장영춘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저 문만 나서면

 

몇 년째 창살 없는 방안에 갇힌 그대여

닿을 듯 닿지 못하는 향수병 목각 기린

 

산 너머 초록 잎들 마구마구 손 흔들면

아프리카 드넓은 저 질주의 본능으로

 

소나기 맞으러 간다.

겅중겅중 목 빼 들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 총총 손 내밀면

코뿔소 작은 샘터에 손에 손잡고 마중 오겠지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어

족쇄를 풀어줘

 

 

 

전공과목 조한일

 

 

누구나 수강하는

()이란 전공과목

 

수많은 선택지에

시험은 버거워도

 

정답이

없는 거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어리연꽃 - 한희정

 

 

파르르

저 여린 몸짓,

세상이치 다 알아

 

채근하지 않아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단박에

아침 해 뜨듯

불쑥 깨어 앉았어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2022년 여울호(통권 79)에서

                                 *사진 : 적도의 야생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