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백문학' 2022년 제2호의 시(4)

김창집 2023. 2. 4. 00:41

 

타인의 취향 정미경

 

 

무슨 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구나 했다

나도 빨간색이 좋을 때가 있다

빨간 옷을 입었다

빨간색을 좋아한다던 말, 생각이 난다

빨간 옷이 새빨게졌다

빨간 옷이 안절부절못해 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친(혹은 종)타인취향죄

빨간 옷은 수감되었다

거울 문 뒤 어두운 감방에 갇혔다

외출 앞에서 빨간 옷은 아직 형틀에 묶여 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빨간 옷은 무죄다

 

 

 

꽃받침 진순효

 

 

보자기처럼 꽃망울 네 귀로 감싸고

꽃샘추위 막던 꽃받침, 그 품에 가려

감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늦은 봄비에 후두두 지고

땅에 다시 피어서야 알았지

 

찾을 수 없이 훌쩍 지나갔다고

스물, 서른, 마흔, 꽃잎 지는 봄마다

아른아른 청춘을 애도하던 나는

몰랐다, 그 꽃잎 한낱 허물인 줄.

그 자리에 영근 씨방이 만삭이 될 즈음

무게 견디는 꽃받침을 보고야 알았지

 

떫고도 달지근했던 감꽃

온전히 품고 익어가는 감을

한 생애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꽃받침

감꼭지에 딱지처럼 앉아 네 귀 떨치고 보여준다

지나간 모든 것은 현재 속에 있고

흔들려도 무게 중심 네 안에 있다고

 

 

 

어떤 처방전 김순국

 

 

부리 하나 만능인 숲 의사 딱따구리

썩은 곳 도려내어 병든 집 고쳐주는

녹내장 난독증 내게 숲지기딱이다 딱!”

 

 

 

마음의 벼랑 - 김영란

   -잔느*에게

 

 

바람이 불고 있다 반쯤 젖는 그녀 가슴

꽃 피는 들길 따라 닿고 싶은 지상의 빛

눈 없는 그 여인에겐 눈동자가 있었네.

만나고 헤어짐도 썰 밀물 오가듯이

역광 속 에스키스 빛나는 시간 사이

목이 긴 삶의 흔적이 길 하나를 만든다

흔들리는 사랑 앞엔 오차도 잴 수 없어

비워둔 괄호처럼 뼈만 남은 영혼 위에

두고 온 세상 한 쪽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

* 화가 모딜리아니의 부인 이름

 

 

 

겨울강 김진숙

 

 

꼬박 지샌 별들이

다 돌아간 아침녘

 

강은 스스로 제 몸을 찢기 시작했다

 

희망도

꼭 저럴 것이다

뜨거워져야

 

 

                *동백문학회 간 동백문학2022년 제2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