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학과의 교류 – 구좌문학회]
♧ 갈대 – 김백윤
생각이 직선으로 뻗는 날이면
허리에 꼿꼿한 통증이 온다
구부린다는 건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
생각도 때로는 동그랗게 말아야 한다는 걸
갈대를 보며 배운다
가느다란 몸으로 바람을 다스리는 갈대
속이고 휘어지며 아집과 관념을 뱉는다
가벼워지면서 부드러워지는 건 갈대만의 방법
사는 게 갈대의 몸짓 같다는 걸
갈대를 보며 배운다
훌훌 털어낼 뭔가가 남아 있다면
바람 부는 날 강변에
서 볼 일이다
생각이 날카로운 날이면
갈대의 언어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볼 일이다
♧ 그 섬에서 – 김은숙
그 때는 몰랐다
마음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는 것을
많은 눈물이 잠재해 있다는 것도
내 손을 꼬옥 잡고 놓아주지 않는 당신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잠 못 드는 밤이다
♧ 도사리 – 고여순
세월을 덧입은 아름드리 비자나무가
수백 년 내력을 풀어 놓는다
가지마다 알알이 품은 젊음
수난 받는 시대마다 꺼져 간 젊음이 있듯
아직 비자열매 익지는 않았지만
더러는 투신하여 오체투지로 희생한다
떨어지는 것이 있기에
깨지면서 품어내는 향기 초록으로 남는다
♧ 바다 – 한미화
당신만 갈 수 있던 넘지 못할 경계의 땅
그 땅과 나 사이로 냉기류가 흐른다
회색빛 동토보다도 더 깊은 그곳
한 모금 한일소주로 심기일전 용기 내어
마른침 삼키며 고백하던
열여덟 설레던 가슴 망사리에 담고서
구쟁기 대여섯 개 오분자기 두어 개
남보다 더 버거운 아이들의 눈망울
휘이이 당신만의 땅으로 내 닫는다
♧ 새해맞이 – 고여생
어제와 변함없는 아침
새해 첫날 해맞이
창문 열어 맑은 새벽 안내하며
게으른 몸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이끌려 나온 헐거운 관절은
기지개 켜는 해를 마중하고
불똥이 두려운 남편
손 내밀어 천근 발걸음 위로한다
포효하는 붉은 함성
두 손 모은 소원 빛무리에 어리니
애기동백 꽃잎 하나하나
찬 이슬에 희망이 여문다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 2022년 제17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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