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제주 오라동 4․3길 – '선달벵디 가는 길'

김창집 2023. 3. 1. 01:00

 

희망 가득한 봄길

 

  올 4월은 실로 오랜만에 잔인한 달을 피해 간 느낌이다. 아니 희망 가득한 봄길이 열렸다고나 할까. 그 동안 완전한 43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던 보수진영의 대통령 당선인이 추모행사에 참석해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라 전제하고, ‘희생자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만이 아니라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이라 했기에.

 

  취재 가려고 들른 버스 정류소 알림판에도 제주43사건 희생자 가족관계 등록부 작성 및 실종신고 청구신청은 도 43지원과나 행정시 자치행정과, 읍면동 주민센터에 문의하라는 내용이 전화번호와 함께 나오고 있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관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되었던 걸 생각하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그냥 생긴 말은 아닌 것 같다.

 

 

제주 오라동 43

 

  오라동은 제주시 중심 중산간 마을이어서 43때 엄청난 피해를 겪었다. 김익렬 연대장과 김달삼 무장대 총책의 협상 사흘만인 51일에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이 일어나, 53일에 미군이 경비대에 총 공격을 명령함에 따라 협상은 깨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유혈충돌로 치닫게 되었다. 오라동은 43의 전개 과정에서 주민 240여 명이 희생되었으며, ‘어우늘’, ‘해산이’, ‘고지레’, ‘선달뱅디등은 불탄 뒤 복구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오라동 43은 그 자취를 둘러보면서 당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아픔을 겪은 주민들의 고통의 세월을 돌아보고, ‘평화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가슴에 새겼으면하는 바람을 갖고 터놓은 길이다. 2개 코스인데, ‘선달벵디 가는 길5.5km1시간 30, ‘해산이동네 가는 길6.5km2시간 정도 소요된다.

 

*고인돌

 

오라동 고인돌과 주민센터

 

  오라동 고인돌(오라지석묘 1)은 선사유적으로 43길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 보도록 배려한 것 같다. 43길 센터에서 사평2길로 내려와 연삼로를 건넌 다음 주민센터를 앞두고 왼쪽 커다란 녹나무들이 서있는 좁은 길로 들어가면 길가에 있다. 그리 크지 않은 팽나무와 함께 철책을 둘렀는데, 상석의 크기는 길이 250cm, 207cm, 두께 3540cm의 규모이다. 도기념물 제2-7호로 발굴하지 않았는지 유물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시 걸어 나와 주민센터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200년쯤 되는 보호수인 팽나무와 해송이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이 나무들이라면 43 때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목격했을 테지만 아무 말이 없다. 1994년에 이전한 주민센터에는 독특한 조형물이 한쪽에 서 있었는데, 오라동 인구가 2015년에 1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념탑이다.

 

*복지센터가 들어선 공회당 엣터

 

오라1구 공회당 옛터

 

  주민센터에서 공설운동장 쪽 제2동산교를 지나 야구장 밖 오라로를 걷는다. 길 양쪽의 왕벚꽃이 때맞춰 부는 바람에 하염없이 흩날리는 것이 43영령들이 넋이 떠도는 것 같은 분위기다. 얼마 안 가 남쪽 오라로16길로 돌아들면 오라1구 공회당 옛터. 아래층은 오라일동 복지회관’, 위층은 참꽃 작은 도서관이라 크게 썼다.

 

  43 당시 경찰과 군이 수시로 주둔해, 주민들을 집결시켜 놓고 삶과 죽음을 결정하던 한이 서린 장소다. 1948115일에는 끌려 나간 주민 7명이 아래 밭에서 총살을 당했는데, 일렬로 세워 놓고 총알 한 발로 몇 명을 뚫을 수 있는지 실험까지 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그런 사람 잡는 곳인 공회당의 추억을 지우려 애써 건물을 헐어버리고, 지금은 독특한 형태의 회관을 지어 경로당과 도서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지레에서 선달뱅디까지

 

  회관에서 나와 연삼로를 건너니 오남로 6, 좁은 길이지만 연북로로 오가는 차들이 많다. 길을 나와 남쪽으로 가다보면 고지교가 나온다. 다리 아래가 한천이고 동쪽에 설문대할망 족두리 바위가 있다. 다리를 건너니 길 입구에 고지레 마을 옛터표지석이 맞는다. ‘고지레곶 올레라는 뜻으로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43 이전 이곳에는 12가구가 살았으나 소개 후 불타 없어지고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그곳에서 곧장 남쪽으로 오르다 LPG충전소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돌아 농로를 따라 다시 북쪽으로 내려간다. 얼마 없어 저류지가 나오고, 오른쪽에 팽나무와 대나무가 있는 곳이 선달뱅디다. ‘뱅디넓은 벌을 뜻하는 제주어로는 벵뒤또는 벵디로 표기해야 맞다. 이곳은 43당시 7호의 주민이 거주했는데, 194811월의 소개령과 초토화 작전으로 불타버리고 역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선달벵디

 

사평마을 경찰파출소 터

 

  선달뱅디에서 토천을 따라 연사길로 나온 뒤 사평교 다리를 지나면 세거리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경찰파출소 터안내판이 나온다. 거기에는 초토화 됐던 마을 일부를 재건하면서 경찰파출소가 들어섰다. 경찰의 감독 하에 주민들은 돌을 날라 성을 쌓고 경비를 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경찰의 비인간적인 모욕을 감내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라고 썼다.

 

  경찰파출소 자리에는 언제 심었는지 종가시나무가 빽빽하다. 상처를 지우고 싶었을까. 10년은 족히 넘은 종가시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다. 더러는 솎아내어 잃어버린 마을 곳곳으로 시집을 보내도 좋겠다. 그래 나무 아래 의자도 놓아 어두운 역사를 몰아내고, 도토리가 떼구르르 구르는 것을 보면서 옛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계속  * 이글은 4월초 취재한 내용인데, 지자체 선거 관계로 기획이 바뀌어 이제 내보냅니다.

 
   * 이 글은 작년 5월초 뉴제주일보에 게재했던 필자의 글입니다.
 
 

*경찰서 자리를 나타낸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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