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하도리 '숨비소리길'(2)

김창집 2023. 2. 14. 00:23

*밭담길을 걷는 해녀들(안내판에서)

 

 

돌담길을 걸으며

 

 

  올레길 21코스와 잠시 떨어져 북쪽으로 걸어가면 밭담이란 안내판과 함께 시멘트 포장길로 방향이 바뀐다. 안내판에 나온 사진은 일련의 마을 아낙네들이 돌담 사잇길을 걸어 물질 가고 있는 모습이다. 아홉 사람 중 한 사람만 테왁을 졌고, 나머지는 탈의장에 걸어둔 걸로 생각된다.

 

  설명문에 따르면, ‘화산활동으로 인해 돌이 많은 제주에서는 돌을 쌓아 밭 경계를 하였는데, 이를 밭담이라고 한다. 밭담을 쌓은 후부터 토지 분쟁이 없어지고 가축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줄었으며, 경지 면적이 넓어져 제주농업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비단 오늘 돌아볼 하도리만이 아니라 구좌읍에는 밭담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고 김종철 선생은 역저 오름 나그네’(1995)에서 구좌읍을 오름의 왕국이라 했거니와 이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아주 좁은데 비해 오름은 40개나 될 정도로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 보니 그 오름에서 돌이 흔하게 나왔고, 용암이 바다 쪽으로 길게 흘러 해녀들이 경작할 바다밭이 늘어나면서 이 지역 해녀활동이 활발했던 것이리라.

 

*복원해 놓은 별방진성

 

다시 별방진성을 돌아보고

 

 

  지난번 올레길을 연재할 때 별방진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언급했으므로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이런 중요한 사적을 어찌 못 본 체 하랴 싶어 다시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2년 전에 눈에 잘 안 띄던 독특한 건물이 보여 다가서 본즉, 독특하게 꾸며놓은 카페와 민박집들이다.

 

  탐라순력도 별방조점이나 별방시사를 보면, 성안 서쪽엔 객사(客舍)를 비롯하여 동창(東倉), 병기고 등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성담은 옛날보다 더 높고 번듯하게 복원했으나, 그 성이 보호하려고 했던 건 찾아볼 길이 없다. 하다못해 집터 등을 발굴하여 유물이나 이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는 건물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원담의 모습

 

서문동 원담과 무두망개

 

  별방진성에서 나와 바다 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른 곳과는 달리 갯바위가 멀리 펼쳐져 있고, 물질하러 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해 놓았다. 그 사이에 자연스레 바닷물 웅덩이와 돌들이 모여 있어, 돌만 들면 보말(고둥)과 깅이()가 수북하게 들어 있을 것 같다. 재수 좋으면 바위에 붙은 큰 배말(삿갓조개)이나 굼벗(군부)도 떼겠다여기는 별방진성 서문 밖 동네여서 서문동인가 보다. 서문동 해녀탈의장인 듯 창고 같은 시멘트 건물 옆으로 테왁들이 널려 있다.

 

  제주에서 원담은 해안가 고기가 잘 들어올 것 같은 목에 돌담을 둘러 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시설이다. 더러 바위로 둘러쳐지거나 돌담이 많이 있는 곳을 택해 돌을 둘렀다.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쌓아 관리하고 고기를 같이 잡았다. 잡는 고기는 주로 멜(멸치)이어서, 어쩌다 멜이 몰려들면 멜이여! 멜 들었져!’ 하고 울러 대서 차롱착(채롱의 한 짝)이든 구덕이든 들고 나와 잡아다 멜국을 끓였다. 그런데 여긴 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무두망개는 빌레와 빌레 사이를 겹담으로 쌓아 놓은 곳으로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다.

 

*모진다리 불턱

 

불턱을 돌아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해녀문화 중 핵심이 되는 부분의 하나가 불턱문화이다. ‘불턱은 해녀가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와서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면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런데 불턱이 중요한 점은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어장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는 장소라는 데 있다.

 

  숨비소리길에 있는 불턱은 세 곳인데, 하도리 서동의 것들이다. 그 중 보시코지불턱은 가름벽을 중심으로 서쪽은 하군들이 사용했고, 동쪽은 상군들이 사용했다. 길쭉하게 만들어 시멘트까지 발라놓았는데, 문주란이 곱게 피어 있다. 모진다리불턱은 원형이 잘 보전되었으며, 지금도 사용 중이라고 했다. 다른 한 곳은 성창 옆 생이덕불턱이다.

 

  불턱에 대해서는 미역 해경 때 조짚을 지고 따라가서 미역귀를 구어 먹었던 것 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사용 중에는 금남(禁男)의 구역이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대부분 현대식 탈의장이 불턱을 대신하고 있어, 그 속의 생활 모습은 해녀박물관에서나마 엿볼 따름이다.

 

*여까지 이어진 마을어장

 

도내에서 제일 큰 마을어장

 

  우리가 가끔 해안도로나 바닷가를 걷다 보면 마을어장표지판을 볼 수 있다. 안내판을 들여다보면 보통 이 지역의 어장은 수산업법에 의하여 어업면허를 받아 관리하는 어장이니, 사전 허락 없이 어장에 들어가 소라, 전복 등 수산물을 불법 포획채취할 시에는 관계법령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 써 놓는다.

 

  관계법령을 잘 모르는 사람은 우리 바다인데 왜 우리가 못 잡아?’하고 불만을 갖겠지만 수산업법 제1조에 수산자원 및 수면을 종합적으로 이용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수산업의 발전과 어업의 민주화를 도모하는 차원이라 했다. 40조의 수산동식물의 번식보호 및 어업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면허를 받아서 가꾸고 권리행사 하는 것이란다.

 

  그러기에 마을어장은 해녀들의 바다밭이며, 삶의 터전이다. 어촌계마다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자격, 해산물 종류에 따른 채취방법과 채취기간, 생산량 조절, 어장 청소 등을 하면서 관리규약을 만들어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마을단위 어촌계가 102개가 있는데, 그 중 하도마을 어장은 579ha(170만평)로 도내 마을어장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그래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해녀 280여명이 오늘도 이 마을어장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계속>

 

 

*이 글은 뉴제주일보에 연재했던 필자의 글입니다.

 

 

*해녀박물관에 재현시킨 불턱